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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10 해리포터AU-고백下
- 2016.04.09 해리포터AU-고백上
- 2016.03.13 00Q전력- 화이트데이
- 2016.03.06 00Q전력- 고백
- 2016.02.14 00Q 전력- 발렌타인데이
- 2016.01.31 00Q 전력-코드네임
- 2016.01.10 00Q 전력-비밀연애
- 2016.01.10 Christmas day
- 2016.01.06 [퀵그시찰리]
글
글
해리포터AU-고백下
* 재미없습니다
* 캐붕주의
* 짧음주의
* 볼드모트 X
고백
W.은설
제임스 본드의 손을 쳐내고 도망치듯 기숙사로 온 날 이후로도, 큐는 계속 본드에게 시달렸다. 수업 시간이 거의 겹치지 않는 래번클로였지만-그리핀도르는 주로 그들의 앙숙 기숙사인 슬리데린과 수업시간이 많이 겹친다-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예쁜아!" 하고 사라지는 제임스 본드는 정말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남자인 자신에게 예쁜이라니, 너무한 호칭 아닌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인 것 같았다. 방금 전에도, 마법약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는 예쁜아! 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것을 같은 기숙사 반장인 초 챙이 막아주었다. 물론 큐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것마저 예쁘다며 호들갑을 떠는 본드였지만.
한숨을 쉬며 스네이프의 지하감옥을 나선 큐가 제 손목을 잡아오는 제임스 본드의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워낙에 꽉 잡아오는 바람에, 전처럼 무언 마법으로 쳐내려 했지만, 그것마저 정신을 산만히 만드는 본드 때문에 실패했다.
"안돼, 안돼! 퀜틴 데일, 얘기좀 하자."
"난 너랑 할 얘기 없는데."
"예쁜아, 잠ㄲ,"
"제임스 본드,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예쁜이'가 아냐. 여자는 더더욱 아니고. 방해되니까 길좀 비켜줄래?"
"알아, 너 남자인거."
"아, 진짜 짜증나네. 방해된다니까? 비켜!"
손으로 단단한 본드의 몸을 밀자 의외로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돌아서는 어깨가 조금 처진 것 같았지만, 큐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변신술 강의실로 향했다.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은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애초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다음날, 기숙사 침대에서 눈을 뜬 큐는 문득 어제의 일을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변신술 강의를 들을 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저녁 시간에 연회장에서 제게 치근덕대지 않고, 그리핀도르 식탁에 앉아 얌전히 식사를 하던 제임스 본드의 어깨가 여전히 축 처진 것은 큐도 신경쓰였기 때문이었다.
자꾸 생각하기 싫었는데, 제임스 본드가 그렇게 축 처진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일까, 계속해서 떠올랐다. 사실, 제임스 본드라면 호그와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플레이보이였다. 이 남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만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땐, 미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보통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큐였고-그렇기 때문에 몸이 닿기만 해도 굉장히 싫어했다-그래서 일부러 큐는 본드를 피해다녔었다. 그런데 하필 퀴디치 경기장에서-바람이 좋아서 종종 그곳에서 책을 읽곤 했다-제 위로 뚝, 떨어져버린 것은 다름아닌 제임스 본드였다. 다친 사람에겐 너그러운 편인데다가, 또 그것이 제임스 본드라는 것을 알기에는 짧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가장 처음 건넨 말은 괜찮아? 였다. 곧이어 예쁘다는 말을 남기고는 기절했기 때문에 대답을 미처 듣진 못했지만.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던 큐가-오늘은 토요일이었다-연회장으로 향했다. 저를 발견하자마자 강아지처럼 뛰어오는 제임스 본드와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그렇지. 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식탁에 앉아 제 몫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젠 옆에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먹을 수 있을만큼 익숙해졌다.
"예쁜이는 아침에도 예쁘네."
"....... 그놈의 예쁜이 소리는 그만 좀 할 수 없어?"
"예쁜 걸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이야?"
젠장할, 한 마디도 안 지네.
마법으로 본드를 저만치 날려버릴까, 하고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애써 제가 올린 기숙사 점수가 대폭 깎아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만두었다. 정말이지 제임스 본드는 저를 귀찮게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자신을 졸졸 쫓아다녔다. 아침을 다 먹고나서, 제 팔보다 더 두꺼운 책을 들고는-제목은 호그와트의 역사였다-호수가로 향한 큐가 제 뒤를 여전히 따라오던 본드를 향해 휙, 하고 돌아섰다. 큐의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제임스 본드, 너 게이야?"
"글쎄,.... 굳이 따지면 아니었는데. 그냥 네가 좋아, 퀜틴."
예쁜아- 라는 호칭으로 장난스럽게 보였던 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좋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맞는걸까. 큐는 제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15년을 살아오면서, 물론 고백을 주로 받는 쪽이었지만, 이런 식의 솔직한 고백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여자 아이들이 수줍게 편지를 직접 전해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부엉이로 편지를 전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에게 고백 받은 것이 처음이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임스 본드는 여유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피식, 하고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큰 손이 제 곱슬거리는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본드가 시선을 내려 저와 눈을 맞췄다.
"그럼 나 퀴디치 연습 간다. 안녕, 퀜틴."
"ㅇ,...."
큐는 저 멀리 사라지는 본드를 바라보았다.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본드의 그 말 보다도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런 본드가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미친 거지, 미친거야, 퀜틴 데일.
중간에 뒤돌아서 손을 흔드는 본드에게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준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을 때였다.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책장을 넘기는 큐의 귓볼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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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해리포터AU-고백上
* 재미없습니다
* 캐붕 주의
* 해리포터 시리즈 등장인물도 등장합니다(현세대)
* 볼드모트 x
고백
W. 은설
그리핀도르 최고의 악동이자 퀴디치 팀의 주장인 제임스 본드는 역시나 오늘도 그의 영혼의 친구인 조지 위즐리, 프레드 위즐리와 함께 연회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위즐리 쌍둥이의 장난으로 연회장의 음식은 모두 꽃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맥고나걸 교수는 제 기숙사의 점수를 각각 20점씩 깎아내렸고-헤르미온느가 올려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그덕에, 맥고나걸 교수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퀴디치는 최고의 일탈이었다. 호그와트의 유일한 스포츠-마법사 결투는 극히 제한되었으니-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제임스 본드는 가장 퀴디치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졸업 후 프로 퀴디치 팀 입단을 목표로 둔 자신과는 달리, 프레드와 조지는 이미 해리 포터의 투자금을 발판 삼아 자신들만의 장난감 가게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들이 자신과 함께 프로 퀴디치 팀에 입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약간 서운했지만, 그것을 티내진 않았다. 하지만 눈치 빠른 위즐리 쌍둥이는, 그것을 눈치 챘는지 제임스 본드에게 '위즐리 장난감 가게 1년 무상 이용권'을 줬는데, 수업에 빠지고 싶을 땐 언제든지 '위즐리의 응급 꾀병 키트'를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었다. 그 다운 발상에 제임스는 고맙다며 웃어주었다.
연회장에서 저녁을 먹은 후, 본드는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을 이끌고 퀴디치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핀도르의 상징인 붉은 색의 경기복을 입은 제임스 본드는 평소의 장난기 많은 얼굴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굳어있었다. 물론, 위즐리 쌍둥이들은 늘 그렇듯이 서로 장난을 치기에 바빴다. 그 뒤의 해리 포터 또한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프레드, 조지."
"알았어, 제임스."
안젤리나 존슨이 퀴디치 공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고는 블러저와 스니치의 구속을 풀었고, 퀘이플을 높이 던짐과 동시에 연습이 시작되었다. 위즐리 쌍둥이는 퀘이플을 가진 그리핀도르의 선수들을 공격하는 블러저를 쉴 새 없이 쳐대었고, 제임스는 골대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원래라면 상대 선수들의 공을 막아낼 제임스였지만 연습이니만큼 제게 날아오는 모든 공을 다 막아내야 했다. 해리 포터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도망친 스니치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블러저가 방향을 바꿔 관중석 쪽에 있던 해리 포터를 향해 날아갔다. 해리는 스니치를 쫓느라 전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사고가 날 것이 분명했다. 제임스 본드는 속력을 내어 관중석으로 돌진했다. 위즐리 쌍둥이가 제임스! 라며 소리쳤지만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제임스의 어깨를 친 블러저가 그와 함께 힘없이 관중석으로 뚝 떨어졌다. 빗자루와 관중석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괜찮아?"
"윽...."
래번클로에, 한 번도 줄이지 않은 교복에, 반장이라.
가장 중요한 건, 그 소년이 누구든간에 안경 뒤의 얼굴이 매우 아름답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반장이면 5학년-자신보다 한 살 어린 셈이다-일 것이 분명했다. 사실, 소년인지 소녀인지 분간하기 굉장히 어려운 얼굴이었다. 제임스 본드는, 소문난 그리핀도르의 플레이 보이답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기절했다.
"....예쁘네."
영문을 모르는 큐는 그저 축 늘어진 그 유명한 '제임스 본드'를 내려다본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고? 누가?
생각의 늪에 빠져있을 때, 저를 밀치고 달려온 위즐리 쌍둥이에 의해 읽고 있던 제 책이 날아갔다. 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라고 생각한 큐가 책을 툭툭 털고는 래번클로 기숙사로 향했다.
*
병동에서 눈을 뜬 제임스는 제 옆에 있는 위즐리 쌍둥이들을 보고는 미소지었다. 간이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자고있는 모습이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똑같았다. 가벼운 탈골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폼프리 부인이 고쳤는지 몸은 개운했다.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프레드, 조지!"
"어어,.... 제임스? 일어났네? 몸은 어때?"
"괜찮아. 그러니까 나가자."
"하지만 폼프리부인이 꼼짝말고 있으랬는데."
"언제 우리가 말을 들은 적이 있어야지. 나 배고파. 연회장으로 가자."
배가 고픈 것은 사실이었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래번클로 반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예뻤고, 여자라고 하기에는 선이 날카로웠다. 척 보기에 공부밖에 모르는 너드 같았는데, 자신이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얼굴을 기억할 정도라니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그 유명한 플레이보이-남자 여자 가리지 않는-자신이 여태까지 몰랐던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잠시만, 나 저쪽에 좀."
"그래, 다녀와."
연회장에 도착하자마자 래번클로의 식탁을 찾은 제임스가 두리번거렸다. 식탁에서도 책을 읽고 있어 얼굴을 책에 파묻은 것이, 딱 어제의 그 소년이었다. 제임스는 그의 뒤로 가서 등을 톡톡, 하고 두 번 두드렸다. 온 연회장의 학생들의 시선이 제게 쏠렸다. 유명한 플레이보이 제임스 본드가-본드 가의 수치라고 불리는-래번클로의 가장 반듯하고, 또 앙칼지기로 유명한 퀜틴 데일에게 치근덕 대는 모습은 새로운 볼거리였다.
"......? 무슨 볼일이라도?"
"예쁜아."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암녹색의 눈동자가 예뻤다. 당황으로 빨갛게 물든 얼굴이 귀여웠다. 채 반도 먹지 못한 음식들을 두고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귀여웠다. 연회장을 나서는 손을 잡아채 이름을 물었다. 사실, 이미 이름은 알고 있었다.
"예쁜이, 이름이 뭐야?"
"....퀜틴 데일."
"아, 네가 그 데일 가의 막내구나. 난 본드야. 제임스 본드."
"알아. 손목 좀 놔줄래?"
"싫은데, 예쁜이."
"......."
노려보는 눈동자는 마치 구석에 몰린 먹잇감이 부들부들 떠는 것같이 느껴졌다. 이런 게 포식자의 마음일 것일까. 제가 꼬시려고 마음 먹은 대상은 한 번도 놓친 적 없던 제임스는 의기양양하게 큐와 눈을 마주쳤다. 결국 무언 마법으로 본드의 손을 쳐낸 퀜틴이 빠르게 제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임스는 눈 앞에서 놓친 먹잇감에 아쉬운지 입맛을 쩝, 하고 다시고는 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 다시 만나면, 절대 손목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꽤 앙칼진 면도 있고."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슬리데린의 베스퍼 린드가 호그와트 최고의 미녀라고 떠들어대는 위즐리 쌍둥이의 외침은 이미 귀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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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전력- 화이트데이
*00Q전력-비밀연애 편과 조금 이어질지도..
*늘 그렇듯 재미없습니다
".....엘."
한숨을 푹 내쉬는 큐의 얼굴이 어두웠다. 3월 13일, 일요일인데도 야근을 하고 있던 큐와 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차트를 훑어보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엘이 기지개를 켰다.
"왜요, 큐?"
"내일이 화이트데이라면서요?"
"음.. 맞아요. 근데 큐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달력을 보던 엘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큐가 이런 걸 챙기는 사람이었나. 여태까지의 큐의 연애사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큐는 단 기념일을 챙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많이 차이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큐, 그런 거 안챙겼잖아요."
"그랬죠. 근데-"
"...본드가 지난 그.. 발렌타인데이때.. 챙겨줘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요."
"세상에, 큐!"
제 랩탑을 가져와 큐 밖에 없는 브랜치에서 작업을 하고있던 그녀는 너무 놀라 그만 얼그레이를 바닥에 엎질렀다. 정작 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랩탑을 두들기고 있었지만, 빨개진 귀 끝은 숨기지 못했다.
"어 그럼.. 사탕은 샀어요?"
"단 거는 의외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더라구요. 나랑 입맛이 정 반대에요."
"음.. 사탕을 싫어하는구나. 술은 어때요? 007은 술 즐기잖아요."
"어.. 사탕이 아니어도 괜찮은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데 물건이 중요할까요, 큐?"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 큐가 고마워요. 라고 하며 미소지었다. 엘도 큐를 따라 미소지었다. 부럽다, 큐. 라고 하며 턱을 괴자 큐가 엘과 눈을 마주했다.
"아.. 엘 남자친구 없었지."
"...큐. 지금 나 놀리는거죠?"
"아닌데."
피식 웃는 큐가 얄미웠다. 007은 지금쯤 하늘 위에 있을 것이었다. 며칠 전 헝가리에서의 임무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덕분에 큐가 그를 위한 선물을 고를 시간이 남아있었다. 엘은 보고서를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다 했으면 일어나요, 큐."
"어디 가요?"
"어디긴요. 선물 골라야죠."
"아아- 잠깐만요."
안 돼요. 당신의 잠깐만은 1시간이 넘잖아요. 하며 큐를 잡아 끈 엘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큐는 모든 시스템을 꺼버리는 것을 성공했고, 제 야상을 든 엘에게 끌려나가고 있었다.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구요. 얼른 가서 007의 취향에 맞는 술을 골라야죠. 그리고 내가 플랫까지 태워다 줄게요. 큐는 차 없잖아요."
"아, 고마워요."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아, 이제 MI6 밖이니까 경어 안 써도 되겠네."
시동을 걸어 MI6를 빠져나온 둘은 술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로 향했다. 상점의 벽을 빼곡히 채운 술병들이 신기한지 큐는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술의 향이 독한 것을 좋아한다는 007의 취향에 맞추어 골라달라고 부탁한 큐가 창고에 들어간 노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그래도 향이 독한 걸 좋아하는 건 용케도 안 잊어먹었네, 큐?"
"음.. 그러게."
"아마 네가 그만큼 007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겠지."
잘 포장된 술병을 받아든 큐가 돈을 지불했다. 오래된 가게라 그런지 술도 오래 되었고, 그만큼 값어치가 더 나가는 술이었다. 두꺼운 종이 박스따위가 아닌, 짙은 나무 상자로 포장해서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큐는 벌써부터 좋아할 본드의 얼굴이 생각나는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가자. 플랫에 데려다 줄게."
"응, 안녕히 계세요-"
차에 올라 타서도 소중한 듯 꼭 안고있는 큐가 귀여워 풋, 하고 웃었다. 본드가 저렇게도 좋을까, 묘하게 부러워지는 엘이었다. 사실, 일과 결혼했다고 해도 될만큼 엘은 놀랍게도 연애에 관심이 없었지만, 기념일만 되면 옆구리가 시린 것이 영 아니었다. 그리고 제 친한 친구인 큐가 닭털을 폴폴 날릴 때면, 어김없이 2년 전에 헤어진 제 남자친구가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엘은 애인 안 사귀어?"
"내가 연애는 무슨. 바빠 죽겠는데 무슨 연애야."
"나도 그랬지. 하지만 본드랑 그렇게 되고 나서는-"
"큐. 닭털 날리니까 조용히 해줄래? 대로 한가운데에서 세워 줘?"
"...미안. 계속 가."
이럴 때보면 영락없이 장난꾸러기인데. 이래서 본드가 큐보고 귀엽다고 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엘이 핸들을 꺾었다. 오랜만에 오는 큐의 플랫이었다. 시동을 걸어 출발한 엘이 사이드미러로 그의 플랫에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큐가 본드를 위해서 술을 다 사다니, 오래살고 볼 일이었다.
*
플랫의 불이 켜지고, 제 고양이들이 달려나와야 하는데도 플랫은 묘하게 조용했다. 신발을 벗고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제 소파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제 고양이들은 그 무릎에 누워 골골거리고 있었다.
"제임스!"
"꽤 늦었군."
"왔으면 연락을 하지..! 왜 불도 안 켜고 있었어요?"
"너 놀래켜 주려고. 손에 든 건 뭐지?"
"아, 이건...."
말끝을 흐리는 큐에 성큼성큼 다가가 박스를 열어본 본드가 미소지었다. 큐는 자신이 마시려고 술을 살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술을 살 때는 단 한가지 이유, 자신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위스키는 제게 주는 선물이었다.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본드를 보자 큐도 안심한 듯 미소지었다.
"내일이 화이트데이라길래..."
큐를 끌어안고는 볼에 입맞춘 본드가 술병을 장식장에 넣어놓았다. 화이트 데이라고 제가 태어난 연도에 맞추어 산 위스키라 더 의미가 깊었다. 더군다나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큐의 선물이라니. 지금 본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고마워, 큐."
큐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인 본드가 그의 귀에 입을 맞췄다.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고, 비로소 '진짜' 화이트데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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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전력- 고백
*오랜만의 전력이라 재미없습니다
*혹시 모를 오타 주의
*짧음 주의
"아아니 그래숴어! 내 머리가 곱슬곱슬하든 말든! 지가 뭔 상관인데요!"
"푸흡, 큐, 취했어요?"
"어? 머니페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세상에, 큐, 난 아까부터 당신 이야기 듣고 있었잖아요."
"아, 그랬나."
뒷머리를 벅벅 긁은 큐가 잔을 말끔하게 비워냈다. 이미 몽롱하게 풀린 두 눈은 초점을 잡지 못했다. 때문에 큐는 겨우겨우 빨간 드레스를 입은 것이 머니페니라는 것을 기억해내었다.
"머니페니이- 그러니까, 그 망할.. 제임스 본드가아-"
"네, 네. 계속 하세요-"
"그러니까아... 왜,.. 자꾸, 자꾸...."
"생각나요?"
흥미진진한 큐의 취중진담에 큐브랜치 직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머니페니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로 큐를 바라보았다. 아마 테이블 저 끝에 제임스 본드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한다면 재밌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머니페니는 큐의 이마를 톡톡 쳤다.
"그..., 네. 자꾸 그래요."
"자꾸 심장도 뛰고?"
"음.. 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푸흡. 정말이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니까.
"그거 화병이에요."
"그쵸? 어쩐지 자꾸 막 열이 오르는게 막...!"
"사실, 좋아하는거에요."
내가요? 그런가...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취해서 초점이 흐릿한 와중에도 정확히 머니페니를 쳐다본 큐가 멍한 눈으로 머니페니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다 듣고 있던 본드도 그 상황이 꽤나 웃겼는지 잔을 들고 큭큭거렸다. 곧이어 눈을 굴리던 큐가 어지러운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제서야 소리내어 웃은 머니페니가 큐의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댔지만 이미 큐는 정신을 놓은 뒤였다.
"내가 데리고 가지."
"본드, 큐의 플랫을 알아요?"
"아니, 내 플랫으로."
"...."
"깨어나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
큐를 안은 채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본드를 보며 태너 이하 큐브랜치 사람들은 내기로 돈을 걸기에 바빴다. 큐가 오늘 한 말을 기억할 지 안할지, 확률은 50대 50이었다.
*
"으으.., 머리아파.."
"일어났나, 큐?"
"ㄴ.. 본드? 당신이 왜 내 플랫ㅇ.."
안경을 쓰자 말끔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제 플랫이 아니었다. 하긴, 아마도 제 플랫이었다면 진작에 제 고양이들이 저를 깨웠을 것이었다. 고개를 저은 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씻었는지 가운 차림의 본드가 보였다. 멍한 큐의 눈을 보고는 재미있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 얼굴이 제법 얄미웠다.
"어제 일이 기억 안 나나보지?"
"어제요? 무슨...?"
정말로 모른다는 눈빛의 큐를 보자 내심 서운해진 본드가 큐의 앞으로 다가갔다. 올려다보는 눈이 아직 탁했다. 브랜치에서 보던 똑부러진 눈이 아니었다. 흐트러진 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느낌이 생소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부드러운 느낌이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물론, 큐의 성격은 따지자면 강아지보단 고양이에 더 가까웠지만.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니 섭섭한데. 어제 네가 고백했잖아, 큐."
"네? 제가요? 뭘요?"
"나 좋아한다며."
귓가에 속삭인 본드가 장난스레 볼에 입을 맞추자 큐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제 쿼터마스터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재밌어지는 반응에 본드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놀리지 마요."
입이 댓발 튀어나와서는 제 행동을 타박하는 것도 귀여웠다. 어쩌면, 저도 쿼터마스터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본드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가까워진 거리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집어넣은 큐가 눈을 깜빡였다.
"놀리는 것 같아, 큐?"
고개를 저은 큐가 제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말 할 때마다 닿을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드가 그런 큐의 손등 위에 입을 맞추고는 떨어져 나갔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면, 믿어 줄 건가?"
씨익 웃은 본드가 큐의 머리를 헝클어 놓고는 방을 나섰다. 어쩌면, 제 쿼터마스터가 술김에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먼저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본드였다.
그리고, 방에 남겨진 큐는 달아오른 볼을 식히느라 무던히도 애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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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 발렌타인데이
*재미없어요. 정말 재미없어요.
*전력 주제를 늦게 보고 부랴부랴 쓴거라 퀄은 전혀 기대하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초콜렛.
달콤한 한 상자면, 금세 기분이 풀어져버리는 마법의 초콜렛. 큐는 그런 초콜렛을 좋아했다. 초콜렛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으나, 카카오 함량이 높은 씁쓸한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초콜렛 안에 술이 든 것도 또한 그랬다. 보통 도수가 높은 술이 들어가서 쓴 맛을 냈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드는 초콜렛 안에 술이 들어간 것과 씁쓸한 초콜렛만 좋아했다. 정 반대의 취향이었다. 큐는 그런 본드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쓴 것을 먹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종종 투덜댔다. 그럴 때마다 본드는 네 입맛이 너무 어리다며 맞받아쳤다.
*
"다녀왔어, 큐."
복귀신고를 하는 본드의 손에는 어김없이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꼭 있어야 할 발터 말고, 다른 무언가가. 큐는 미간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하려다가, 제가 좋아하는 것임을 알고는 댓발 나왔던 입술을 도로 집어넣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일 좋아하는 초콜렛이었다.
"...본드?"
늘 그냥 사오던 초콜렛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특별했다. 잘 포장된 상자도 그랬고, 예쁜 초콜렛의 모양도 그랬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나, 하고 골똘히 생각해 본 큐였으나, 애초에 그런 개념이 별로 없는 큐였기 때문에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본드는 그런 큐를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2월 14일."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의 큐를 보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본드가 그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귀에 대고 발렌타인데이잖아, 큐. 하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인 큐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발렌타인 데이가 뭐였죠? 라고 묻는 제 연인은 너무나 귀여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렛을 선물하는 날이지."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큐가 뒤를 돌아 본드를 끌어안았다. 브랜치 직원들의 시선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남자가 저를 위해 초콜렛을 챙겨줬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고마워요. 라고 속삭인 큐가 그의 목을 좀 더 끌어안았다. 본드가 책상 위에 놓인 초콜렛 상자를 풀어버리고는 제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곧이어 퍼지는 달콤한 향기에 큐가 몸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그리고 그 향기가 제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자 큐는 눈을 감았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녹아내리는 초콜렛이 그 어떤 초콜렛보다도 달았다고, 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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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코드네임
*짧고 재미없습니다. 조각글 수준이에요.
*Q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제임스, 우리 처음 본 날, 기억 나요?"
"내가 복귀하고 나서 처음이었지. 내셔널 갤러리에서 말이야."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싱긋 웃은 큐가 생각에 잠겼다. 내셔널 갤러리는 그와 본드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인, 그러니까 본드가 막 007이라는 코드네임을 받았을 때였다. 그 때의 그는 조금 더 젊었고, 패기가 넘쳤다. 그를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었다. Q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모두 본드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냐면요,"
-
"하아, 하,"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너무 놀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왜 하필, 그것도 제가 있던 곳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을까. 퀜틴 데일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곳-아마도 출입문이었던-으로 향했으나, 연약한 유리는 제 앞에서 부서져내렸다. 몸을 잔뜩 웅크린 덕에 다치진 않았으나 서 있을 공간이 부족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가 야드로 전화를 걸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위치를 설명했다. 주변엔 건물 잔해에 깔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죽음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으나 끔찍한 것은 여전했다. 퀜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저를 막고 있던 건물 잔해들이 치워졌으며, 폭탄 테러범으로 보이는 사람이 야드로 연행되고 있었다. 제 앞의 건물 잔해를 밟고 서있던 사람이 돌아섰다. 눈부신 금발에, 젠틀한 미소였다. 하지만 어딘가 거칠어보이는 사람이었다. 퀜틴은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눈을 뜨니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컴퓨터-주로 해킹-에 익숙했고,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렸던, 옥스포드 대학을 조기 졸업한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를 찾기로 결심했다. 제 자존심을 걸고,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한 마디를 꼭 전해주고 싶었다.
퇴원 후 제 플랫에 있던 랩탑으로 스코틀랜드 야드 서버에 접속했다. 야드의 모든 경찰들을 조사했으나 제가 봤던 사람은 없었다. 야드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일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다는건 그 퀜틴 데일에게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모든 국가 기관을 뒤졌고-물론 MI6 같은 곳은 접근하지 못했다-꽤나 시간이 흘렀다. 벌써 제가 폭탄 테러를 겪은 지 일주일이 흘렀다. 해군 소속 제임스 본드 중령. 그것이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해군이 왜, 어째서 폭탄 테러-그것도 런던 은행-의 현장에 있던 것일까. 해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퀜틴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제가 현재 그를 찾을 수 없다면, 모든 정보가 모여있는 곳에서 그를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영국의 모든 비밀스러운 정보가 모이는 곳, 그리고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 바로MI6였다.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렇게 MI6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뒤, Q라는 코드네임을 받고 나서야 퀜틴 데일은 제임스 본드를 만날 수 있었다.
-
"그런데 당신은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본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좀처럼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 못한 본드였는데, 꽤나 놀랐나보다. 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코드네임이 당신을 찾게 도와준거죠."
"만약 내가 MI6에도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어쩌긴요. 영국 전체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냈겠죠. MI6의 쿼터마스터가 당신 하나 못 찾아낼까봐요?"
Q라는 코드네임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제임스 본드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쿼터마스터가 되고 나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큐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놀려주고 싶었다. 우스꽝스러운-본드의 표현을 빌리자면-수트에 야상자켓, 그리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한 발터와 라디오 수신기. 아마도 꽤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이라도 그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에 그랬던 것이었다. 큐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입 밖으로 낸다면 아마도 세 달짜리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 좋아한 건 언제부터였는데?"
"뭘 그런걸 물어요, 새삼스럽게."
당연히, 처음 본 그 순간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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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비밀연애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늘 그렇지만 재미없습니다
*짧습니다
"아, 엘, 왔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네, 큐. 10분 뒤에 상담실로 와요."
모든 요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심리 검사를 진행한다. 사실 말이 심리 검사지, 거의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그래서 '엘'은 MI6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리 검사에 열심인 사람은, 다름아닌 쿼터마스터와 태너였다.
쿼터마스터-통칭 Q-와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마치 동성 친구 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기계를 주로 다루지만 매우 섬세했고, 꽤나 감수성이 풍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패딩턴이라고, 늘 그걸 보고는 울곤 한다며 종종 말하기도 했다.
"엘, 나 왔어요. 얼그레이 괜찮죠?"
"세상에, 큐. 바쁜데도 차까지. 고마워요. 앉아요."
하아-
한숨을 쉬는 게 그의 버릇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의 한숨은 모두 요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007에 대해서 생각만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러니까, 제임ㅅ, 아니 본드가 또 임무 중에 여자랑...그..."
"섹스요?"
"그래요, 그거. 그걸 또 했는데.. 글쎄 그 인간이 그 방에 CCTV를 보고 씨익 웃는 거에요, 나 보는거 뻔히 아니까."
"그래서요?"
"아니 근데 자기가 그렇게 웃으면 어떤 표정인지 자기는 모르나봐요. 나는 막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막 솟구쳐서... 나는 여기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니까요. 제ㅇ, 본드가 내 지시를 잘 따르는 것도 아니구요. 그 날도 그 여자랑 잘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큐, 007이랑 연애해요?"
풉-
큐가 머금고 있던 얼그레이를 뿜어버렸다. 그 덕에 엘의 옷이 젖어버렸다. 미안해요, 라고 어쩔 줄 모르는 큐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딱 봐도 둘이 연애하는거 다 티나는데. 본인들은 아마 잘 숨긴다고 생각하겠지만-아니 큐만-사실은 브랜치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부서인 자신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아마 MI6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큐만 모르는 것 같았다. 본드는 알 텐데. 아니, 오히려 일부러 더 티를 냈을지도 모른다. 큐의 반응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었으니까.
"ㄴ...내가 ㅈ, 본드랑 미쳤다고 연애 해요????"
"큐.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얘기한 거 그대로 들려 줘요?"
반박 못 할 텐데. 그건 완전 바람난 남편 말하는 것 같았다구요, 큐. 라고 덧붙이자 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숨을 쉬며 다시 얼그레이를 홀짝였다. 이 맛에 아마 본드가 큐를 놀려먹는 거겠지. 엘도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모르는 척 해 줄게요. 뭐, 얼마나 갈 진 모르겠지만요."
빙긋 웃으며 얘기하자 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른 때는 표정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아서 인간이 맞나,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청년이다. 제 나이로 보인달까. 사실, 큐는 엘과 동갑이었다. 그러기에는 성격이 그 나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큐. 그래서 007이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질투났던거군요?"
"내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질투라고 해요, 큐."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큐의 표정은 꽤나 바보같았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큐는 그동안 007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MI6 입사 이전부터 큐를 알았던 엘은 그의 연애사를 전부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업무 중이니 서로 존칭을 쓰지만 사석에선 꽤나 자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얼그레이를 들고 있는 큐의 손을 내려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차를 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큐, 큐? 하는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찾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얘기는 우리 일 끝나고 마저 해요. 오늘 007 임무 나갔죠?"
"오늘 출국했고, 내일 임무 시작이에요. 아직 하늘 위일걸."
"좋아요. 그럼 이따 퇴근하고 펍에서 보죠. 이제 태너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차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고마워요, 엘. 퇴근 후에 봐요. 세탁비는..."
"이따 줘요. 나가봐요, 큐."
웃으며 나가는 큐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입모양으로 안녕. 이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여운 제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사실 알고 있었지만-연애한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007이라니. 뭐, 그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차트를 정리하자마자 태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빼꼼, 하고 들이미는 머리가 오늘따라 더 휑해 보였다.
*
"그래서요, 태너?"
"부장님한테 달려간 007이 글쎄, 부장님 볼에 키스를 하는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브랜치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 그러니까 그게 물론 부장님이 얘기한건 아니고..."
"007이 전부 얘기했다, 이거죠?"
"네. 그래놓고 부장님 한테는 모르는 척 하라는 거 있죠? 공공연한 비밀 연애라나 뭐라나. 부장님 알게 되시면 또 반응 재밌어질 거라면서, 기다리라고요."
"...정말 악취미네요. 아니면 원래가 그런 취향?"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007이 부장님을 좀 어리게 보죠. 맨날 귀엽다고 하시니까."
으으, 하며 팔을 쓸어올리는 태너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지 팔을 벅벅 긁었다. 글쎄, 그 007이 부장님을 놀려먹는 능구렁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하는 태너가 어쩐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은 근데 부장님도 티를 많이 내요. 007만 보면 귀가 빨개지거나, 바쁘지도 않은 업무를 갑자기 막 시키기도 하고. 부끄럼 타는 타입이신가 봐요. 부장님만 모르는 비밀 연애인데."
푸흡, 하고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랬죠.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태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공개 하시면 좋을텐데. 하고는 얼마 없는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냥 공개 하시면 저희들이 부장님 앞에서 연기 할 필요도 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연기 안해도 잘 모르시지만. 엘, 제 머리 보여요? 한 달 전보다 더 빠졌다니까요? 007은 부장님에게 말하는 날에는 쥐도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하지, 부장님은 온 몸으로 티내지. 진짜 죽겠다고요, 저."
"태너, 내가 탈모에 좋은 샴푸 사줄게요. 즐거운 얘기 고마워요."
"후우,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요. 이건 왜 한 달에 한 번인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로 따지면 아마 하루에 한 번 해도 모자랄텐데."
"내 업무도 생각해 줘야죠. 차트 정리하고 보고서 올릴 거에요. 오늘도 근무 환경 개선해야한다고 쓸 거지만, M이 들어줄 지는 모르겠네요. 잘 가요, 태너. 다음 달에 보죠."
"네. 늘 고마워요, 엘."
태너가 나가고, 너무 웃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엘이 차트에 빠르게 적어내렸다.
[스트레스성 탈모 심화, 근무 환경 개선 필요]
뭐, M은 이 보고서를 무시할 것이 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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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day
*2015 00Q 크리스마스합작에 냈던 작품입니다. 주최자는 나오미님이셨구요. 트위터에 공큐합작 검색하시면 아마 나올거예요.
*오메가버스 세계관
*본드는 우성알파, 큐는 열성오메가
*아이들의 나이는 4살로 설정하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본드."
"수고했어, 큐."
긴장이 풀리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큐가 송신기를 빼내었다. 비교적 가까운 로마에서 수행한 임무라, 바로 비행기를 탄다면 아슬아슬하게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지 않게 비행기 타요. 아마 시간 맞춰서 비행기 타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난 애들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본드. 집에서 봐요."
'통신 끊김'이라고 뜬 커다란 화면을 뒤로한 채 큐가 퇴근을 명령했다. 요원 백업중인 분들 말고는 다들 퇴근하세요! 하고 소리친 그가 MI6 내의 데이케어센터-말로리와의 육아 휴직에 대한 싸움 끝에 얻어낸-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데이케어센터에는 제 아이들과 큐브랜치 직원의 자녀 몇 명밖에 없었다. 큐는 제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었다.
“다니엘, 레아. 잘 있었어? 파파가 많이 늦었지, 미안해.”
“아냐, 괜찮아. 피터랑 놀고 있었어!”
“그랬어? 이제 집에 가자. 레아, 파파 손 잡아야지?”
데이케어센터의 교사인 로렌에게 인사를 한 후 아이들의 손을 잡은 큐가 MI6 뒤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큐는 면허가 없어서-사실 딸 생각도 없었지만-늘 출퇴근을 튜브로 하곤 했다. 물론 본드가 있을 땐 그의 차로 이동하지만, 이렇게 본드가 임무를 간다면 종종 결혼 전처럼 튜브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큐는 다행히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튜브를 타면 그건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더군다나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탄다면,...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은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긴 해도 런던에서 제일가는 세이프 하우스였다. MI6의 최연소 쿼터마스터가 설계한 보안체계에, 집의 모든 유리는 방탄으로 되어있었다.
제 씨를 지키기 위한 알파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본드 역시 그런 알파들 중에 한명이었다. 그는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가 있는 꽤나 이름 높은 스코틀랜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본드 가문은 예전부터 우성 알파로 유명했고, 그 알파들은 모두 제 씨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큐가 임신했을 당시만 해도 얼마나 싸고도는지 애들 때문이 아닌 본드 때문에 피곤할 지경이었다. 열성 오메가인 큐는 임신이 힘들었고, 본드와 함께 지내면서 호르몬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임신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쌍둥이라니. 큐와 본드는 제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 시가지에 땅을 사들여 이런 집을 지었고, 큐와 아이들은 그 안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이 그렇게 썩어나냐며 큐가 말렸지만 본드는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더 이상 큐는 말릴 수 없게 되었다. 휴가도 못 가니 벌어들이는 돈만 족족 쌓이는 꼴이었다. 물론 그건 큐도 마찬가지였지만.
한참을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던 큐는 그만 소파에서 잠들고 말았다. 아이들이 거실의 커다란 트리 앞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니엘, 다 썼어?”
“아니, 아직. 너는?”
“나도 아직. 산타한테 뭐 사달라고 할 거야?”
“나는 장난감 총! 레아 너는?”
“나는 으음... 곰인형! 곰인형 갖고 싶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설핏 잠이 깬 큐가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45분, 자정이 되기 15분 전이었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걸 보니 비행기가 늦거나, 아니면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트리 앞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들의 앞에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두 장씩 놓여 있었다. 큐가 한 손으로 집어들고는 숨죽여 웃었다. 귀엽기도 해라.
현관에서 익숙한 해제음이 들렸다. 소파에 앉아 아이들의 편지를 읽던 큐가 고개를 들었다. 피 냄새가 옅게 풍기는 본드가 다가와 입을 맞췄다. 함께 들어온 냉기에 살짝 몸을 떤 큐를 그가 안아주었다.
“왔어요, 제임스?”
“기다리지 말랬잖아.”
“크리스마스잖아요. 당신 오는 거 보고 자려고..”
“그랬어? 애들ㅇ...”
“쉿, 저기서 잠들었어요. 아빠 기다리다가.”
배시시 웃은 큐가 아이들을 가리켰다. 트리 앞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들이 숨을 색색 내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곰인형과 장난감 총을 사온 본드가 아이들의 머리맡에 선물을 내려놓고는 두꺼운 담요를 가져와 아이들에게 덮어주었다. 그 유명한 더블오세븐이 곰인형을 들고 입국했다고 생각하니 그만 풋, 하고 터져버렸다. 피 냄새가 나는 수트에, 귀여운 곰인형이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오 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스카이폴 사건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다정한 모습이었다. 더블오세븐과 그의 아이라니.
“얼른 씻어요. 피 묻은 건 내일 맡기고요. 아, 내일은 쉬겠네, 참.”
본드의 자켓을 받아든 큐가 한숨을 쉬었다. 핏자국은 빨리 없애야 하는데. 하고 시무룩해진 큐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 본드가 욕실로 향했다. 어느 정도 지난 후, 큐가 랩탑을 닫음과 동시에 본드의 물소리도 멎었다. 탄탄한 몸이 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 돼요. 애들 거실에 있잖아요.”
피식 웃은 본드가 아직 물기가 남은 몸을 숙여 얼굴을 포갰다. 위에서 내리 누르듯 키스한 탓에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영락없이 키스를 받고 있어 숨이 모자랐던 큐가 단단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느새 파자마 단추 위에서 꼼지락대던 손가락도 저절로 멀어졌다.
“오늘은 이 이상 안 된다고 했잖아요. 애들 거실에 있는데 깨면 어쩌려고.”
“스릴 있고 좋지 않겠어?”
“나 오늘도 야근한 거 알잖아요.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눈을 흘기며 돌아누운 큐의 뺨에 입을 맞춘 본드가 그를 끌어안았다. 제법 따끈한 체온에, 제 본딩 오메가 특유의 향이 느껴지자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향이 피어오르는 뒷목에 쪽쪽대며 입을 맞추자 얼른 자라는 큐의 핀잔이 돌아왔다. 본드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
“발터는 챙겼어요?”
어김없이 묻는 말에 본드는 고개를 저었다. 뭘 물어. 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것은 늘 본드의 몫이었고, 큐는 늘 그렇듯이 식탁에 앉아 얼그레이를 내리고 있었다. 머그잔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아 그가 피식 웃었다.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에 담아 식탁 앞으로 가니 큐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세모꼴로 떠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라, 본드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큐에게 입을 맞췄다. 물론, 바로 얼굴을 밀어내는 큐였지만.
“으읍, 이걸로 넘어갈 생각 말아요! 내가 이번엔 진짜 신경 써서 만든 거라구요! 예산 따느라 죽을 뻔 했는데 그걸 두고 와요, 제임스 본드?!”
“미안, 이번엔 정말로 잃어버렸어.”
“내가 그 말을 참 잘도 믿겠네요.”
“우웅....파파, 대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레아가 식탁에 다가와 큐를 끌어안았다. 아직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아 잠투정을 부리는 레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 큐가 다시 제 앞의 본드를 노려보았다. 본드는 말없이 웃으며 큐에게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를 먹여주었다. 뒤이어 깨어난 다니엘이 본드에게 와서 칭얼거렸다.
“다니엘, 잘 잤어? 손에 그건 뭐야?”
“우웅, 대디 줄 카드..”
삐뚤삐둘한 글씨로 써내려간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보고 싶어, 대디.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적혀있었다. 본드는 그런 다니엘이 기특한지 여러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를 쏙 빼닮은 외모와 머리칼-큐를 닮은 부분은 암녹색 눈동자뿐인-을 가진 다니엘은 유독 본드를 잘 따랐다. 본드는 잠이 덜 깨 꾸벅꾸벅 조는 다니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니엘, 레아. 저기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간 선물 봤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와아-하며 달려가는 쌍둥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편지를 보고 사오지도 않았는데 정확히 그들이 갖고 싶던 것을 살 수 있었던 건,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장난감 총과 곰인형 노래를 부르던 두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큐가 콧노래를 부르며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말끔히 비워냈다.
“크리스마슨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좀 특별한 저녁을 보내고 싶은데요. 애들 좋아하는 디즈니 숍에 갔다가, 근사한 저녁도 먹고 싶고요.”
“이런 거 말하는 거야, 퀜틴?”
본드가 미리 준비한 크루즈 레스토랑 티켓을 내밀었다. 임무에 가기 전, 우연히 태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사둔 티켓이었다. 큐는 사람이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혹시나 하고 사본 것이었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세상에, 언제 준비한 거에요?”
“그냥, 혹시나 해서 사봤어.”
“내가 사랑한다고 얘기 했어요?”
“네가 사람 많은 크루즈를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매일 MI6에 갇혀있는데, 어디가 싫을까.”
본드의 목을 끌어안은 큐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을 내리 깔고는 서툴게 핥아오는 혀에 본드가 웃으며 다시 그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큐의 등이 움찔, 하는 것이 느껴졌다. 느릿하게 큐의 입술을 핥은 본드가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떼었다. 쪽, 하고 가벼운 입맞춤이 몇 번 더 반복되었고, 아이들은 각자 가진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다니엘, 레아. 아침 먹어야지?”
“우웅, 파파. 조금만 더 갖고 놀고 싶은데-”
“안 돼.”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의 손에서 각각 장난감 총과 곰인형을 압수했다. 아이들은 히잉, 하고 본드를 올려다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안 돼. 다니엘, 레아. 대신 아침 먹으면, 대디가 선물 사줄게.”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이미 주셨는데?”
“저건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거고, 이번엔 아빠가 주는 선물. 어때? 아침 먹을 거지?”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이 순식간에 시리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큐가 깜빡하고 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시지와 계란이 딱 두 명 분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장을 볼 시간이 없기도 없었거니와, 큐 혼자서 아이 둘을 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큐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장을 보면 가져오는 것 또한 문제였고 말이다.
“아이들은 내가 마저 먹일 테니까, 씻고 옷 갈아입어.”
“알았어요. 그럼 좀 부탁할게요.”
-
“파파! 우리 어디 가요?”
“너희들 장난감 사러. 뭐 갖고 싶어, 다니엘?”
“나? 으음... 음.. 투스리스 피규어!”
“레아는?”
“레아는 엘사 드레스! 엘사 드레스 갖고 싶어, 파파!”
“알았어. 그거 사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자?”
“차 시동 걸어 놓을게. 문 단속 하고 나와.”
“응, 히터 틀어놔요.”
창문을 걸고, 집안의 모든 보안 체계를 조정한 다음에야 문을 나선 큐는 그새 따뜻하게 데워진 차 안의 공기에 만족스러운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부드럽게 핸들을 꺾은 본드가 익숙한 듯 디즈니 숍으로 향했다. 역시나 디즈니 숍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아이들은 단단한 본드의 팔에 안겨 있었다. 엘사 드레스와 투스리스 피규어를 간신히 계산하고 나오자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마 큐까지 매장 안에 들어갔다면, 분명히 그는 사람들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다 샀어요? 꽤 오래 걸렸네요.”
“응, 보다시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으으, 하면서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투스리스 피규어라더니, 제 얼굴 만한 크기의 피규어를 끌어안은 다니엘과, 아까워서 포장도 뜯지 못한 엘사 드레스를 꼭 껴안은 레아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얼른 가요, 우리 늦겠다.”
고개를 끄덕인 본드가 속력을 올렸다. 런던에서 꽤나 떨어진 브라이튼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의 로맨틱한 식사라. 물론 수트를 입은 제임스 본드와는 꽤나 잘 어울렸지만, 역시나 임무 이외에 그런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서는 주로 ‘여자’를 만나고는 했었으니 말이다.
차 안의 공기가 덥다 못해 답답해져서 본드는 제 쪽의 창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따뜻한 공기와 선물의 만족감으로 인해 이미 잠들어 있었다. 큐도 또한 따뜻한 공기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삼십 분 정도 남아있었다. 고요하고도 편안한 적막이었다.
“퀜틴, 다니엘, 레아.”
“으응... 다 왔어요?”
“응. 다 왔어.”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두 팔로 안아올리자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안고는 크루즈 안으로 향했다. 코트를 벗어 직원에게 건네고는 통유리창 바로 옆의 테이블에 앉은 큐가 탄성을 내질렀다. 해가 어둑어둑하게 지는 수평선, 반짝이는 건물들 모두 큐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으니까.
“마음에 들어, 퀜틴?”
“최고에요. 여태까지 받아 본 선물 중에요. 정말로요.”
“예약하길 잘했군.”
턱을 괴고 한참을 밖을 바라보던 큐가 펑, 하는 큰 소리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두워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수면에 비친 불꽃과, 그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놀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새 잠이 깬 아이들도 창문에 달라붙어 와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제임스, 고마워요.”
“뭐가.”
“그냥, 다요.”
피식 웃은 본드가 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밤바다와, 화려한 도시의 빌딩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큐에게도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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