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전력-비밀연애

00Q/00Q전력 2016. 1. 10. 23:09
*오타주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늘 그렇지만 재미없습니다
*짧습니다






"아, 엘, 왔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네, 큐. 10분 뒤에 상담실로 와요."


모든 요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심리 검사를 진행한다. 사실 말이 심리 검사지, 거의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그래서 '엘'은 MI6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리 검사에 열심인 사람은, 다름아닌 쿼터마스터와 태너였다.

쿼터마스터-통칭 Q-와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마치 동성 친구 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기계를 주로 다루지만 매우 섬세했고, 꽤나 감수성이 풍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패딩턴이라고, 늘 그걸 보고는 울곤 한다며 종종 말하기도 했다.


"엘, 나 왔어요. 얼그레이 괜찮죠?"


"세상에, 큐. 바쁜데도 차까지. 고마워요. 앉아요."


하아-


한숨을 쉬는 게 그의 버릇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의 한숨은 모두 요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007에 대해서 생각만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러니까, 제임ㅅ, 아니 본드가 또 임무 중에 여자랑...그..."


"섹스요?"


"그래요, 그거. 그걸 또 했는데.. 글쎄 그 인간이 그 방에 CCTV를 보고 씨익 웃는 거에요, 나 보는거 뻔히 아니까."


"그래서요?"


"아니 근데 자기가 그렇게 웃으면 어떤 표정인지 자기는 모르나봐요. 나는 막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막 솟구쳐서... 나는 여기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니까요. 제ㅇ, 본드가 내 지시를 잘 따르는 것도 아니구요. 그 날도 그 여자랑 잘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큐, 007이랑 연애해요?"


풉-


큐가 머금고 있던 얼그레이를 뿜어버렸다. 그 덕에 엘의 옷이 젖어버렸다. 미안해요, 라고 어쩔 줄 모르는 큐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딱 봐도 둘이 연애하는거 다 티나는데. 본인들은 아마 잘 숨긴다고 생각하겠지만-아니 큐만-사실은 브랜치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부서인 자신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아마 MI6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큐만 모르는 것 같았다. 본드는 알 텐데. 아니, 오히려 일부러 더 티를 냈을지도 모른다. 큐의 반응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었으니까.


"ㄴ...내가 ㅈ, 본드랑 미쳤다고 연애 해요????"


"큐.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얘기한 거 그대로 들려 줘요?"


반박 못 할 텐데. 그건 완전 바람난 남편 말하는 것 같았다구요, 큐. 라고 덧붙이자 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숨을 쉬며 다시 얼그레이를 홀짝였다. 이 맛에 아마 본드가 큐를 놀려먹는 거겠지. 엘도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모르는 척 해 줄게요. 뭐, 얼마나 갈 진 모르겠지만요."


빙긋 웃으며 얘기하자 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른 때는 표정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아서 인간이 맞나,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청년이다. 제 나이로 보인달까. 사실, 큐는 엘과 동갑이었다. 그러기에는 성격이 그 나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큐. 그래서 007이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질투났던거군요?"


"내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질투라고 해요, 큐."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큐의 표정은 꽤나 바보같았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큐는 그동안 007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MI6 입사 이전부터 큐를 알았던 엘은 그의 연애사를 전부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업무 중이니 서로 존칭을 쓰지만 사석에선 꽤나 자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얼그레이를 들고 있는 큐의 손을 내려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차를 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큐, 큐? 하는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찾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얘기는 우리 일 끝나고 마저 해요. 오늘 007 임무 나갔죠?"


"오늘 출국했고, 내일 임무 시작이에요. 아직 하늘 위일걸."


"좋아요. 그럼 이따 퇴근하고 펍에서 보죠. 이제 태너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차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고마워요, 엘. 퇴근 후에 봐요. 세탁비는..."


"이따 줘요. 나가봐요, 큐."


웃으며 나가는 큐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입모양으로 안녕. 이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여운 제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사실 알고 있었지만-연애한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007이라니. 뭐, 그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차트를 정리하자마자 태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빼꼼, 하고 들이미는 머리가 오늘따라 더 휑해 보였다.


*


"그래서요, 태너?"


"부장님한테 달려간 007이 글쎄, 부장님 볼에 키스를 하는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브랜치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 그러니까 그게 물론 부장님이 얘기한건 아니고..."


"007이 전부 얘기했다, 이거죠?"


"네. 그래놓고 부장님 한테는 모르는 척 하라는 거 있죠? 공공연한 비밀 연애라나 뭐라나. 부장님 알게 되시면 또 반응 재밌어질 거라면서, 기다리라고요."


"...정말 악취미네요. 아니면 원래가 그런 취향?"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007이 부장님을 좀 어리게 보죠. 맨날 귀엽다고 하시니까."


으으, 하며 팔을 쓸어올리는 태너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지 팔을 벅벅 긁었다. 글쎄, 그 007이 부장님을 놀려먹는 능구렁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하는 태너가 어쩐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은 근데 부장님도 티를 많이 내요. 007만 보면 귀가 빨개지거나, 바쁘지도 않은 업무를 갑자기 막 시키기도 하고. 부끄럼 타는 타입이신가 봐요. 부장님만 모르는 비밀 연애인데."


푸흡, 하고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랬죠.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태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공개 하시면 좋을텐데. 하고는 얼마 없는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냥 공개 하시면 저희들이 부장님 앞에서 연기 할 필요도 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연기 안해도 잘 모르시지만. 엘, 제 머리 보여요? 한 달 전보다 더 빠졌다니까요? 007은 부장님에게 말하는 날에는 쥐도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하지, 부장님은 온 몸으로 티내지. 진짜 죽겠다고요, 저."


"태너, 내가 탈모에 좋은 샴푸 사줄게요. 즐거운 얘기 고마워요."


"후우,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요. 이건 왜 한 달에 한 번인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로 따지면 아마 하루에 한 번 해도 모자랄텐데."


"내 업무도 생각해 줘야죠. 차트 정리하고 보고서 올릴 거에요. 오늘도 근무 환경 개선해야한다고 쓸 거지만, M이 들어줄 지는 모르겠네요. 잘 가요, 태너. 다음 달에 보죠."


"네. 늘 고마워요, 엘."


태너가 나가고, 너무 웃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엘이 차트에 빠르게 적어내렸다.


[스트레스성 탈모 심화, 근무 환경 개선 필요]


뭐, M은 이 보고서를 무시할 것이 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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