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전력- 화이트데이

00Q/00Q전력 2016. 3. 13. 23:30


*00Q전력-비밀연애 편과 조금 이어질지도..
*늘 그렇듯 재미없습니다





".....엘."


한숨을 푹 내쉬는 큐의 얼굴이 어두웠다. 3월 13일, 일요일인데도 야근을 하고 있던 큐와 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차트를 훑어보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엘이 기지개를 켰다.


"왜요, 큐?"


"내일이 화이트데이라면서요?"


"음.. 맞아요. 근데 큐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달력을 보던 엘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큐가 이런 걸 챙기는 사람이었나. 여태까지의 큐의 연애사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큐는 단 기념일을 챙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많이 차이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큐, 그런 거 안챙겼잖아요."


"그랬죠. 근데-"


"...본드가 지난 그.. 발렌타인데이때.. 챙겨줘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요."


"세상에, 큐!"


제 랩탑을 가져와 큐 밖에 없는 브랜치에서 작업을 하고있던 그녀는 너무 놀라 그만 얼그레이를 바닥에 엎질렀다. 정작 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랩탑을 두들기고 있었지만, 빨개진 귀 끝은 숨기지 못했다.


"어 그럼.. 사탕은 샀어요?"


"단 거는 의외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더라구요. 나랑 입맛이 정 반대에요."


"음.. 사탕을 싫어하는구나. 술은 어때요? 007은 술 즐기잖아요."


"어.. 사탕이 아니어도 괜찮은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데 물건이 중요할까요, 큐?"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 큐가 고마워요. 라고 하며 미소지었다. 엘도 큐를 따라 미소지었다. 부럽다, 큐. 라고 하며 턱을 괴자 큐가 엘과 눈을 마주했다.


"아.. 엘 남자친구 없었지."


"...큐. 지금 나 놀리는거죠?"


"아닌데."


피식 웃는 큐가 얄미웠다. 007은 지금쯤 하늘 위에 있을 것이었다. 며칠 전 헝가리에서의 임무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덕분에 큐가 그를 위한 선물을 고를 시간이 남아있었다. 엘은 보고서를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다 했으면 일어나요, 큐."


"어디 가요?"


"어디긴요. 선물 골라야죠."


"아아- 잠깐만요."


안 돼요. 당신의 잠깐만은 1시간이 넘잖아요. 하며 큐를 잡아 끈 엘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큐는 모든 시스템을 꺼버리는 것을 성공했고, 제 야상을 든 엘에게 끌려나가고 있었다.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라구요. 얼른 가서 007의 취향에 맞는 술을 골라야죠. 그리고 내가 플랫까지 태워다 줄게요. 큐는 차 없잖아요."


"아, 고마워요."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아, 이제 MI6 밖이니까 경어 안 써도 되겠네."


시동을 걸어 MI6를 빠져나온 둘은 술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로 향했다. 상점의 벽을 빼곡히 채운 술병들이 신기한지 큐는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술의 향이 독한 것을 좋아한다는 007의 취향에 맞추어 골라달라고 부탁한 큐가 창고에 들어간 노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그래도 향이 독한 걸 좋아하는 건 용케도 안 잊어먹었네, 큐?"


"음.. 그러게."


"아마 네가 그만큼 007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겠지."


잘 포장된 술병을 받아든 큐가 돈을 지불했다. 오래된 가게라 그런지 술도 오래 되었고, 그만큼 값어치가 더 나가는 술이었다. 두꺼운 종이 박스따위가 아닌, 짙은 나무 상자로 포장해서 더 고급스럽게 보였다. 큐는 벌써부터 좋아할 본드의 얼굴이 생각나는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가자. 플랫에 데려다 줄게."


"응, 안녕히 계세요-"


차에 올라 타서도 소중한 듯 꼭 안고있는 큐가 귀여워 풋, 하고 웃었다. 본드가 저렇게도 좋을까, 묘하게 부러워지는 엘이었다. 사실, 일과 결혼했다고 해도 될만큼 엘은 놀랍게도 연애에 관심이 없었지만, 기념일만 되면 옆구리가 시린 것이 영 아니었다. 그리고 제 친한 친구인 큐가 닭털을 폴폴 날릴 때면, 어김없이 2년 전에 헤어진 제 남자친구가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엘은 애인 안 사귀어?"


"내가 연애는 무슨. 바빠 죽겠는데 무슨 연애야."


"나도 그랬지. 하지만 본드랑 그렇게 되고 나서는-"


"큐. 닭털 날리니까 조용히 해줄래? 대로 한가운데에서 세워 줘?"


"...미안. 계속 가."


이럴 때보면 영락없이 장난꾸러기인데. 이래서 본드가 큐보고 귀엽다고 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엘이 핸들을 꺾었다. 오랜만에 오는 큐의 플랫이었다. 시동을 걸어 출발한 엘이 사이드미러로 그의 플랫에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큐가 본드를 위해서 술을 다 사다니, 오래살고 볼 일이었다.



*



플랫의 불이 켜지고, 제 고양이들이 달려나와야 하는데도 플랫은 묘하게 조용했다. 신발을 벗고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제 소파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제 고양이들은 그 무릎에 누워 골골거리고 있었다.


"제임스!"


"꽤 늦었군."


"왔으면 연락을 하지..! 왜 불도 안 켜고 있었어요?"


"너 놀래켜 주려고. 손에 든 건 뭐지?"


"아, 이건...."


말끝을 흐리는 큐에 성큼성큼 다가가 박스를 열어본 본드가 미소지었다. 큐는 자신이 마시려고 술을 살 타입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술을 살 때는 단 한가지 이유, 자신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위스키는 제게 주는 선물이었다.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본드를 보자 큐도 안심한 듯 미소지었다.


"내일이 화이트데이라길래..."


큐를 끌어안고는 볼에 입맞춘 본드가 술병을 장식장에 넣어놓았다. 화이트 데이라고 제가 태어난 연도에 맞추어 산 위스키라 더 의미가 깊었다. 더군다나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큐의 선물이라니. 지금 본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다.


"고마워, 큐."


큐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인 본드가 그의 귀에 입을 맞췄다.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고, 비로소 '진짜' 화이트데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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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전력- 고백

00Q/00Q전력 2016. 3. 6. 22:56



*오랜만의 전력이라 재미없습니다
*혹시 모를 오타 주의
*짧음 주의




"아아니 그래숴어! 내 머리가 곱슬곱슬하든 말든! 지가 뭔 상관인데요!"


"푸흡, 큐, 취했어요?"


"어? 머니페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세상에, 큐, 난 아까부터 당신 이야기 듣고 있었잖아요."


"아, 그랬나."


뒷머리를 벅벅 긁은 큐가 잔을 말끔하게 비워냈다. 이미 몽롱하게 풀린 두 눈은 초점을 잡지 못했다. 때문에 큐는 겨우겨우 빨간 드레스를 입은 것이 머니페니라는 것을 기억해내었다.


"머니페니이- 그러니까, 그 망할.. 제임스 본드가아-"


"네, 네. 계속 하세요-"


"그러니까아... 왜,.. 자꾸, 자꾸...."


"생각나요?"


흥미진진한 큐의 취중진담에 큐브랜치 직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머니페니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로 큐를 바라보았다. 아마 테이블 저 끝에 제임스 본드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한다면 재밌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머니페니는 큐의 이마를 톡톡 쳤다.


"그..., 네. 자꾸 그래요."


"자꾸 심장도 뛰고?"


"음.. 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푸흡. 정말이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니까.


"그거 화병이에요."


"그쵸? 어쩐지 자꾸 막 열이 오르는게 막...!"


"사실, 좋아하는거에요."


내가요? 그런가...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취해서 초점이 흐릿한 와중에도 정확히 머니페니를 쳐다본 큐가 멍한 눈으로 머니페니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다 듣고 있던 본드도 그 상황이 꽤나 웃겼는지 잔을 들고 큭큭거렸다. 곧이어 눈을 굴리던 큐가 어지러운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제서야 소리내어 웃은 머니페니가 큐의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댔지만 이미 큐는 정신을 놓은 뒤였다.


"내가 데리고 가지."


"본드, 큐의 플랫을 알아요?"


"아니, 내 플랫으로."


"...."


"깨어나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


큐를 안은 채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본드를 보며 태너 이하 큐브랜치 사람들은 내기로 돈을 걸기에 바빴다. 큐가 오늘 한 말을 기억할 지 안할지, 확률은 50대 50이었다.



*



"으으.., 머리아파.."


"일어났나, 큐?"


"ㄴ.. 본드? 당신이 왜 내 플랫ㅇ.."


안경을 쓰자 말끔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제 플랫이 아니었다. 하긴, 아마도 제 플랫이었다면 진작에 제 고양이들이 저를 깨웠을 것이었다. 고개를 저은 큐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씻었는지 가운 차림의 본드가 보였다. 멍한 큐의 눈을 보고는 재미있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 얼굴이 제법 얄미웠다.


"어제 일이 기억 안 나나보지?"


"어제요? 무슨...?"


정말로 모른다는 눈빛의 큐를 보자 내심 서운해진 본드가 큐의 앞으로 다가갔다. 올려다보는 눈이 아직 탁했다. 브랜치에서 보던 똑부러진 눈이 아니었다. 흐트러진 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느낌이 생소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부드러운 느낌이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물론, 큐의 성격은 따지자면 강아지보단 고양이에 더 가까웠지만.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니 섭섭한데. 어제 네가 고백했잖아, 큐."


"네? 제가요? 뭘요?"


"나 좋아한다며."


귓가에 속삭인 본드가 장난스레 볼에 입을 맞추자 큐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제 쿼터마스터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재밌어지는 반응에 본드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놀리지 마요."



입이 댓발 튀어나와서는 제 행동을 타박하는 것도 귀여웠다. 어쩌면, 저도 쿼터마스터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본드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가까워진 거리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집어넣은 큐가 눈을 깜빡였다.


"놀리는 것 같아, 큐?"


고개를 저은 큐가 제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말 할 때마다 닿을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드가 그런 큐의 손등 위에 입을 맞추고는 떨어져 나갔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면, 믿어 줄 건가?"


씨익 웃은 본드가 큐의 머리를 헝클어 놓고는 방을 나섰다. 어쩌면, 제 쿼터마스터가 술김에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먼저 말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본드였다.


그리고, 방에 남겨진 큐는 달아오른 볼을 식히느라 무던히도 애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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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 발렌타인데이

00Q/00Q전력 2016. 2. 14. 22:57
*매우매우매우매우 짧습니다
*재미없어요. 정말 재미없어요.
*전력 주제를 늦게 보고 부랴부랴 쓴거라 퀄은 전혀 기대하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초콜렛.


달콤한 한 상자면, 금세 기분이 풀어져버리는 마법의 초콜렛. 큐는 그런 초콜렛을 좋아했다. 초콜렛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으나, 카카오 함량이 높은 씁쓸한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초콜렛 안에 술이 든 것도 또한 그랬다. 보통 도수가 높은 술이 들어가서 쓴 맛을 냈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드는 초콜렛 안에 술이 들어간 것과 씁쓸한 초콜렛만 좋아했다. 정 반대의 취향이었다. 큐는 그런 본드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쓴 것을 먹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종종 투덜댔다. 그럴 때마다 본드는 네 입맛이 너무 어리다며 맞받아쳤다.


*


"다녀왔어, 큐."


복귀신고를 하는 본드의 손에는 어김없이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꼭 있어야 할 발터 말고, 다른 무언가가. 큐는 미간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하려다가, 제가 좋아하는 것임을 알고는 댓발 나왔던 입술을 도로 집어넣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일 좋아하는 초콜렛이었다.


"...본드?"


늘 그냥 사오던 초콜렛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특별했다. 잘 포장된 상자도 그랬고, 예쁜 초콜렛의 모양도 그랬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나, 하고 골똘히 생각해 본 큐였으나, 애초에 그런 개념이 별로 없는 큐였기 때문에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본드는 그런 큐를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2월 14일."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의 큐를 보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본드가 그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귀에 대고 발렌타인데이잖아, 큐. 하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고개를 끄덕인 큐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발렌타인 데이가 뭐였죠? 라고 묻는 제 연인은 너무나 귀여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렛을 선물하는 날이지."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큐가 뒤를 돌아 본드를 끌어안았다. 브랜치 직원들의 시선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남자가 저를 위해 초콜렛을 챙겨줬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고마워요. 라고 속삭인 큐가 그의 목을 좀 더 끌어안았다. 본드가 책상 위에 놓인 초콜렛 상자를 풀어버리고는 제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곧이어 퍼지는 달콤한 향기에 큐가 몸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그리고 그 향기가 제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자 큐는 눈을 감았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녹아내리는 초콜렛이 그 어떤 초콜렛보다도 달았다고, 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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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코드네임

00Q/00Q전력 2016. 1. 31. 23:04

*짧고 재미없습니다. 조각글 수준이에요.
*Q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제임스, 우리 처음 본 날, 기억 나요?"


"내가 복귀하고 나서 처음이었지. 내셔널 갤러리에서 말이야."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싱긋 웃은 큐가 생각에 잠겼다. 내셔널 갤러리는 그와 본드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인, 그러니까 본드가 막 007이라는 코드네임을 받았을 때였다. 그 때의 그는 조금 더 젊었고, 패기가 넘쳤다. 그를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었다. Q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모두 본드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냐면요,"



-



"하아, 하,"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너무 놀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왜 하필, 그것도 제가 있던 곳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을까. 퀜틴 데일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곳-아마도 출입문이었던-으로 향했으나, 연약한 유리는 제 앞에서 부서져내렸다. 몸을 잔뜩 웅크린 덕에 다치진 않았으나 서 있을 공간이 부족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가 야드로 전화를 걸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위치를 설명했다. 주변엔 건물 잔해에 깔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죽음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으나 끔찍한 것은 여전했다. 퀜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저를 막고 있던 건물 잔해들이 치워졌으며, 폭탄 테러범으로 보이는 사람이 야드로 연행되고 있었다. 제 앞의 건물 잔해를 밟고 서있던 사람이 돌아섰다. 눈부신 금발에, 젠틀한 미소였다. 하지만 어딘가 거칠어보이는 사람이었다. 퀜틴은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눈을 뜨니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컴퓨터-주로 해킹-에 익숙했고,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렸던, 옥스포드 대학을 조기 졸업한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를 찾기로 결심했다. 제 자존심을 걸고,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한 마디를 꼭 전해주고 싶었다.


퇴원 후 제 플랫에 있던 랩탑으로 스코틀랜드 야드 서버에 접속했다. 야드의 모든 경찰들을 조사했으나 제가 봤던 사람은 없었다. 야드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일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다는건 그 퀜틴 데일에게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모든 국가 기관을 뒤졌고-물론 MI6 같은 곳은 접근하지 못했다-꽤나 시간이 흘렀다. 벌써 제가 폭탄 테러를 겪은 지 일주일이 흘렀다. 해군 소속 제임스 본드 중령. 그것이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해군이 왜, 어째서 폭탄 테러-그것도 런던 은행-의 현장에 있던 것일까. 해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퀜틴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제가 현재 그를 찾을 수 없다면, 모든 정보가 모여있는 곳에서 그를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영국의 모든 비밀스러운 정보가 모이는 곳, 그리고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 바로MI6였다.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렇게 MI6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뒤, Q라는 코드네임을 받고 나서야 퀜틴 데일은 제임스 본드를 만날 수 있었다.



-



"그런데 당신은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본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좀처럼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 못한 본드였는데, 꽤나 놀랐나보다. 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코드네임이 당신을 찾게 도와준거죠."


"만약 내가 MI6에도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어쩌긴요. 영국 전체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냈겠죠. MI6의 쿼터마스터가 당신 하나 못 찾아낼까봐요?"


Q라는 코드네임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제임스 본드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쿼터마스터가 되고 나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큐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놀려주고 싶었다. 우스꽝스러운-본드의 표현을 빌리자면-수트에 야상자켓, 그리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한 발터와 라디오 수신기. 아마도 꽤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이라도 그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에 그랬던 것이었다. 큐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입 밖으로 낸다면 아마도 세 달짜리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 좋아한 건 언제부터였는데?"


"뭘 그런걸 물어요, 새삼스럽게."


당연히, 처음 본 그 순간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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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비밀연애

00Q/00Q전력 2016. 1. 10. 23:09
*오타주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늘 그렇지만 재미없습니다
*짧습니다






"아, 엘, 왔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네, 큐. 10분 뒤에 상담실로 와요."


모든 요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심리 검사를 진행한다. 사실 말이 심리 검사지, 거의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그래서 '엘'은 MI6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리 검사에 열심인 사람은, 다름아닌 쿼터마스터와 태너였다.

쿼터마스터-통칭 Q-와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마치 동성 친구 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기계를 주로 다루지만 매우 섬세했고, 꽤나 감수성이 풍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패딩턴이라고, 늘 그걸 보고는 울곤 한다며 종종 말하기도 했다.


"엘, 나 왔어요. 얼그레이 괜찮죠?"


"세상에, 큐. 바쁜데도 차까지. 고마워요. 앉아요."


하아-


한숨을 쉬는 게 그의 버릇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의 한숨은 모두 요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007에 대해서 생각만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러니까, 제임ㅅ, 아니 본드가 또 임무 중에 여자랑...그..."


"섹스요?"


"그래요, 그거. 그걸 또 했는데.. 글쎄 그 인간이 그 방에 CCTV를 보고 씨익 웃는 거에요, 나 보는거 뻔히 아니까."


"그래서요?"


"아니 근데 자기가 그렇게 웃으면 어떤 표정인지 자기는 모르나봐요. 나는 막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막 솟구쳐서... 나는 여기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니까요. 제ㅇ, 본드가 내 지시를 잘 따르는 것도 아니구요. 그 날도 그 여자랑 잘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큐, 007이랑 연애해요?"


풉-


큐가 머금고 있던 얼그레이를 뿜어버렸다. 그 덕에 엘의 옷이 젖어버렸다. 미안해요, 라고 어쩔 줄 모르는 큐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딱 봐도 둘이 연애하는거 다 티나는데. 본인들은 아마 잘 숨긴다고 생각하겠지만-아니 큐만-사실은 브랜치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부서인 자신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아마 MI6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큐만 모르는 것 같았다. 본드는 알 텐데. 아니, 오히려 일부러 더 티를 냈을지도 모른다. 큐의 반응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었으니까.


"ㄴ...내가 ㅈ, 본드랑 미쳤다고 연애 해요????"


"큐.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얘기한 거 그대로 들려 줘요?"


반박 못 할 텐데. 그건 완전 바람난 남편 말하는 것 같았다구요, 큐. 라고 덧붙이자 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숨을 쉬며 다시 얼그레이를 홀짝였다. 이 맛에 아마 본드가 큐를 놀려먹는 거겠지. 엘도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모르는 척 해 줄게요. 뭐, 얼마나 갈 진 모르겠지만요."


빙긋 웃으며 얘기하자 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른 때는 표정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아서 인간이 맞나,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청년이다. 제 나이로 보인달까. 사실, 큐는 엘과 동갑이었다. 그러기에는 성격이 그 나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큐. 그래서 007이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질투났던거군요?"


"내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질투라고 해요, 큐."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큐의 표정은 꽤나 바보같았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큐는 그동안 007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MI6 입사 이전부터 큐를 알았던 엘은 그의 연애사를 전부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업무 중이니 서로 존칭을 쓰지만 사석에선 꽤나 자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얼그레이를 들고 있는 큐의 손을 내려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차를 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큐, 큐? 하는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찾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얘기는 우리 일 끝나고 마저 해요. 오늘 007 임무 나갔죠?"


"오늘 출국했고, 내일 임무 시작이에요. 아직 하늘 위일걸."


"좋아요. 그럼 이따 퇴근하고 펍에서 보죠. 이제 태너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차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고마워요, 엘. 퇴근 후에 봐요. 세탁비는..."


"이따 줘요. 나가봐요, 큐."


웃으며 나가는 큐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입모양으로 안녕. 이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여운 제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사실 알고 있었지만-연애한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007이라니. 뭐, 그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차트를 정리하자마자 태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빼꼼, 하고 들이미는 머리가 오늘따라 더 휑해 보였다.


*


"그래서요, 태너?"


"부장님한테 달려간 007이 글쎄, 부장님 볼에 키스를 하는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브랜치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 그러니까 그게 물론 부장님이 얘기한건 아니고..."


"007이 전부 얘기했다, 이거죠?"


"네. 그래놓고 부장님 한테는 모르는 척 하라는 거 있죠? 공공연한 비밀 연애라나 뭐라나. 부장님 알게 되시면 또 반응 재밌어질 거라면서, 기다리라고요."


"...정말 악취미네요. 아니면 원래가 그런 취향?"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007이 부장님을 좀 어리게 보죠. 맨날 귀엽다고 하시니까."


으으, 하며 팔을 쓸어올리는 태너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지 팔을 벅벅 긁었다. 글쎄, 그 007이 부장님을 놀려먹는 능구렁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하는 태너가 어쩐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은 근데 부장님도 티를 많이 내요. 007만 보면 귀가 빨개지거나, 바쁘지도 않은 업무를 갑자기 막 시키기도 하고. 부끄럼 타는 타입이신가 봐요. 부장님만 모르는 비밀 연애인데."


푸흡, 하고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랬죠.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태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공개 하시면 좋을텐데. 하고는 얼마 없는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냥 공개 하시면 저희들이 부장님 앞에서 연기 할 필요도 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연기 안해도 잘 모르시지만. 엘, 제 머리 보여요? 한 달 전보다 더 빠졌다니까요? 007은 부장님에게 말하는 날에는 쥐도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하지, 부장님은 온 몸으로 티내지. 진짜 죽겠다고요, 저."


"태너, 내가 탈모에 좋은 샴푸 사줄게요. 즐거운 얘기 고마워요."


"후우,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요. 이건 왜 한 달에 한 번인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로 따지면 아마 하루에 한 번 해도 모자랄텐데."


"내 업무도 생각해 줘야죠. 차트 정리하고 보고서 올릴 거에요. 오늘도 근무 환경 개선해야한다고 쓸 거지만, M이 들어줄 지는 모르겠네요. 잘 가요, 태너. 다음 달에 보죠."


"네. 늘 고마워요, 엘."


태너가 나가고, 너무 웃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엘이 차트에 빠르게 적어내렸다.


[스트레스성 탈모 심화, 근무 환경 개선 필요]


뭐, M은 이 보고서를 무시할 것이 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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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 첫 살인

00Q/00Q전력 2016. 1. 3. 23:31
*짧습니다
*재미없어요. 막 휘갈겼습니다.
*본드의 첫 살인에 대한 기억을 보듬어주는 큐를 보고싶었는데 실패한 것 같네요.
*캐붕주의







탕-



모든 더블오섹션의 요원들이 말했듯, 처음의 '살인'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제 전임 007도, 현재의 005도 모두 햇병아리 제임스 본드-이제 막 00섹션에 올라선-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이었다. 아무리 타겟을 맞추는 연습을 했어도 살인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블오 요원들의 시작은 모두 그랬다.


제 첫 살인도 그랬다. 아무리 '국가'를 위한 살인이라고 해도,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제 신분은 공적으로는 제임스 본드 중령이었고, 드러나서는 안되는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처음 방아쇠를 당기던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고, 종종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꿈을 꿀 때면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기도 했다.



*




"큐."


"또 꿈을 꿨군요."


제 옆의 어린 연인은 언제나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옆에서 잠든 제게 신경을 쓰는 것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업무 때문이었다. 덕분에 항상 악몽을 꾸고 나면 제 옆에 있던 어린 연인이 그를 안아주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몸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심한 얼굴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도, 제게 온 신경을 쏟는 것이 고마웠다.


처음 제가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을때,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랬군요. 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물론 그도 본드 못지 않게 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한 번도 제 손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살인의 무게를 제 손으로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당신의 첫 살인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는 내가 짐작하지 못하겠죠.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니까."


"......."


"나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없애진 못해요. 그저 이렇게 꿈을 꿨을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식은땀을 흘리는 당신을 안아주는 것 밖에 못 하죠."


"...그거면 충분해, 큐."



*



제 첫 살인은 어느 생체실험실의 책임자를 죽이는 일이었다. 일대 일로 그와 대면하고는 총을 들어올렸을 때, 수없이 많은 움직이는 타겟판을 쏘았음에도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고 그는 서랍 속의 제 총을 집어들었다. 역시, 미리 총알을 빼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을 때 이미 싸늘히 식은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군? 처음인가?"


조롱 섞인 비웃음을 던지던 그를 향해 총을 들어올렸다.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 마주친 그의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 눈이 감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싸늘히 식어가는 죽어버린 몸뚱아리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제 첫 살인이었고, 그 눈은 지금까지도 꿈에 등장했다. 갈색의 눈동자였다.


처음 임무를 완수하고는 MI6로 복귀했을 때, 본드는 수많은 심리치료를 받아야했다. 잠이 들면 갈색의 눈동자가 저를 따라다녔다. 제가 사용했던 총을 가지고 복귀했으나 그 총은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M은 말없이 본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마 그 손길이 없었다면 정말로 미쳐버렸을 것이다.


훈련을 할 때도 타겟에 그 눈동자가 비쳐 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손 때문에 1위를 달리던 본드의 사격 훈련 점수는 엉망이 되었다. 결국 본드는 첫 임무를 완수하고는 세 달을 심리 치료에 매진해야 했다. 그만큼 첫 살인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



"내가 누누히 얘기하지만 요원들은 대부분 꾸준한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해요."


"그래도 빈도 수가 많이 줄었는걸."


"빈도 수가 적은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도-"


"16년이 지났어, 큐."


"......"


"근데 어제 일 처럼 생생해. 모든 더블오 요원들이 그랬겠지. 다들 나에게 그랬어.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째 부터는 쉽다고. 그건 맞는 얘기야. 난 지금 두 번째 타겟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거든."


"내가 죽을 때까지 아마 날 따라다닐거야. 그건 내 그림자야, 큐."


"....본드."



불쌍한 사람. 큐는 그런 본드를 좀 더 꼭 안아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에 대한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적어도 함께 있을 땐 그 '첫 살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단단한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을 감싸쥐었다. 이 손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큐는 제 애인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까칠한 손바닥이 입술에 고스란히 닿았다. 큐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발터는 꼬박꼬박 반납하도록 해요. 알았죠?"


눈을 접으며 예쁘게 말한 큐가 쪽, 소리나도록 다시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어깨를 으쓱한 본드가 그의 얼굴을 끌어왔다. 가까워지는 얼굴에 큐는 사르르 웃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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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부상

00Q/00Q전력 2015. 12. 27. 23:25
*오타 및 노잼주의
*짧습니다






쾅-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큐브랜치에 울렸다.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운 새까만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머그잔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기어이 그 머그잔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제 모습을 잃었다.


"부장님? 부장님! 괜찮으세요?"


태너가 큐의 어깨를 잡았다. 손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태너의 목소리를 듣고 가까스로 제정신을 되찾은 큐가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잡았다.


"더블오세븐? 더블오세븐! 내 말 들려요?"


인이어가 치직거린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친 큐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겨있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불안한 큐의 동공이 떨렸다. 한참을 아무것도 못한 채 애꿎은 책상만 쾅쾅 쳐대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큐는 움직일 줄 몰랐다. 주변의 카메라들을 아무리 돌려도 본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치직거리던 인이어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큐의 얼굴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물들었다.


"더블오세븐? 지금 어디에요? 무사해요?"


"큐.."


"어디에요. 어디길래 스마트 블러드도 뺀거에요?"


"큭...뺀게 아니고,.."


"아냐, 그건 됐고. 일단 어디에요. 지금 의료팀이랑 백업 팀 보낼거에요.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죠?"


"임무 지역에서, 크윽. 세시 방향으로 약 500미터정도.. 폐건물 안에 있어, 큐. 빨리... 윽,"


"다들 뭐 해요? 본드 목소리 못들었어요? 빨리 의료팀이랑 백업 팀 보내요! 태너, 멍하니 서있지 말고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큐의 손이 빨라졌다. 태너는 황급히 의료팀과 백업팀을 보냈고, 그제야 한숨을 내쉰 큐가 제 발치의 깨진 머그잔을 바라보았다. 젠장, 어쩐지 이번 머그는 꽤 오래간다 했는데.

본드의 백업을 할 때마다 평소보다 더 강박적으로 얼그레이를 찾는 큐는 그가 위험에 처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머그를 떨어트렸다. 연인이 되기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큐를 감성적으로 만들어버린건 바로 그 유명한 제임스 본드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저 둘의 연애가 오래지 않아 파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3년째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평범하게.

주말에만 만나던-그마저도 큐의 워커홀릭 기질 때문에 몇 시간 만나지도 못했다-그들은 점차 MI6내에서도 붙어먹더니, 결국에는 플랫을 합치기에 이르렀다. 이유인 즉슨 볼 시간도 부족한데 꼭 떨어져 지내야하냐는 큐의 합리적인 시간 개념 때문이었다. 본드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들은 사실상 결혼만 안 했지 거의 부부같은 사이였다. 둘 사이의 파트너쉽은 더욱 끈끈해졌고, 본드도 조금은 제 몸을 아낄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본드가 다칠 때마다 머그잔을 깨는 큐는 정말이지 더이상은 본드의 백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제 두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부상을 당하는 장면을 본다는건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드와의 연애 후에는 종종 태너에게 백업을 맡기기도 했었다.

한참을 브랜치에 앉아있던 큐가 의료팀이 도착했다는 말과 동시에 지하의 의료센터로 향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본드의 상황을 물어보니 이번 부상은 꽤나 심각했다. 어깨에 총상을 입었고, 왼팔과 등에 자상을 입었다고 했다. 출혈이 꽤 많아 조금만 더 있었다면 쇼크가 올 수 있었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그만 큐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옆에 있던 말로리와 태너가 그를 일으켜 주었다. 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



수술실에서 병동으로 옮겨진 본드는 수술이 끝난지 세시간이 지났음에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초조하게 옆에 앉아 손을 덜덜 떨던 큐가 미세한 손의 움직임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제임스? 하고 조심스레 부르니 눈을 뜬 본드의 눈동자와 제 눈동자가 마주쳤다.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졌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큐."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물을 입 앞에 대주니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살짝 몸을 일으켜 물을 삼켰다. 왜 울어.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마치 저를 달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으흑, 흑,...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기는 해요?"


"안 죽었잖아."


입만 살아서는, 진짜! 하고 소리치던 큐가 본드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와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본드는 오른팔을 옮겨 제 옆에 놓인 큐의 손을 잡아주었다. 제 손을 급하게 휘감아오는 큐의 손가락을 쓸어준 본드가 그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한참을 울던 큐는 티슈로 제 눈물을 모두 닦아내었다. 퉁퉁 부은 눈이 제법 귀여워서 본드는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 큐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웃지 마요, 진짜...."


"보직 변경 신청할까, 큐?"


나 때문에 우는 네 모습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 라고 덧붙인 본드의 말에 큐는 놀란듯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여러번 보직 변경을 하라고 해도 그렇게 말을 듣지 않던 본드였는데. 큐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죠? 약속 한거에요? 약속 꼭 지켜야해요?"


고개를 끄덕인 본드가 큐와 눈을 맞췄다. 푸른 눈에 담긴 확신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위험한 일이 없을거라곤 장담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화면으로 제 연인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큐는 몸을 숙여 제 연인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기 직전, 고마워요. 라고 속삭인 입술이 까칠한 본드의 입술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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