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에그시로트]무제

KINGSMAN/조각글 2016. 1. 6. 22:03

 

 

 

* 메메님의 리퀘로 썼던 아주 옛날의 연성입니다.

*찰그시의 사립학교 게이물이 보고싶었을 뿐이고요.

*오타 및 노잼주의

 

 

 

 

 


"어,... 엄마?"

 



정말 뜻밖에도, 예상치 못하게 날아온 입학 통지서는 에그시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명문 사립학교의 이름이 써진 입학통지서에는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었고-후에 그것은 해리하트의 배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학은 9월 1일이었다. 미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제 아들이 드디어 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던 것이다. 딱 하나 불안했던 것은, 학교가 기숙학교여서 에그시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에그시가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어느새 딘의 귀에, 또 로트와일러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로트와일러는 저와 한 동네에서 붙어먹던 '사회배려자'에 속하는 에그시가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을 알고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트와일러는 에그시의 첫 남자친구였다. 정작 에그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밑바닥인 저와는 달리 혼자 그 밑바닥을 벗어나는 에그시가 탐탁지않았다. 분명히 그 곳에 가서 대단한 집 자제들을 많이 볼 것이고, 그렇다면 에그시는 자신을 완벽히 잊을 것이었다. 로트와일러는 그게 너무나 두려웠다.


-


"너 여기서 뭐하냐? 또 나 씹고있었냐?"


shit. 에그시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후원자인 해리 하트를 만나는 날에는 그래도 잠잠했는데. 아마 제 차를 망가뜨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게 누가 건드리랬나.
에그시는 딘과, 로트와일러- 그러니까 뒷골목에서 자라왔던 제 불우한 생애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다. 특히, 후원자인 해리 하트를 만나게 되면서 그 생활에 물들어 나쁜 짓을 했던 자신까지도 부끄럽게 여겼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뻤는데, 하필이면 해리와 만나는 도중에 로트와일러가 나타나다니. 에그시의 기분은 지금 최저점을 찍고 있었다. 에그시는 해리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했지만,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가요."



"Nonsense. 맥주가 남았잖니."



젠장맞을 로트와일러. 에그시는 로트와일러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필이면 해리가 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해리가 자신에게 실망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얘 차를 훔쳤다고 딘이 손봐주랬거든. 이건 너희 엄마도 못 막아줘."


"이봐, 젊은이들."



에그시의 침묵을 깬 건 다름아닌 제 후원자 해리였다. 로트와일러와 그의 패거리들의 눈이 해리에게로 쏠렸다.



"내가 기분이 별로라서 말이야, 에그시가 맞을 짓을 한 건 틀림없겠지만 조용히 가주면 아주 고맙겠네. 난 이 멋진 기네스를 마저 마셔야 하니까."



"...이봐, 노친네. 죽기 싫으면 빠지시지?"


"해리, 농담 아니에요. 어서 가세요."


"....좀 비켜주게."


걱정스러운 에그시의 눈빛에 하는 수 없이 일어선 해리가 제 우산을 들고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철없는 패거리들의 야유가 들렸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기네스를 아까워 할 뻔 했다.


"어린 애인을 찾으려면 스미스 가로 가보라구."


에그시와 제 사이를 그런 관계로 본 것인지, 샌님같은 제 외모를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해리 하트의 기분을 더 망쳐놓기에 충분했다.


"Manners, Maketh, Man."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로트와일러와 그의 패거리, 그리고 에그시까지도 해리의 싸한 변화에 입을 다물었다. 차가운 눈빛과, 경직된 목소리. 자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그럼, 내가 가르쳐주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해리가 날린 컵에 로트와일러가 맞아 넘어가고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로트와일러의 패거리들을 한번에 제압하는 해리는 제가 알던 해리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에그시, 정말 미안하구나. 네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거였는데."


"아니에요, 해리. 오히려 잘됐는걸요."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 해리가 제 기네스를 마저 들이켰다. 마냥 공부만 하던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어.. 해리, 아깐 정말로 고마웠어요. 그리고.. 학교도, 어, 감사드려요."


"무슨 소리니, 에그시. 고마워 할 필요 없단다. 당연히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인걸."


".. 엄마도 정말 고마워하고 계세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해리."


"그러자꾸나. 조심히 들어가렴, 에그시."



-


"에그시 너 이새끼....!"



아, 씨발. 어쩐지 요새 좀 잠잠하다 싶더니만. 입술이 터졌는지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로트와일러를 올려다보자 한 대를 때리고도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대는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또 왜."


"이젠 노친네랑 붙어먹고 다니냐? 그 노친네 완전 깡패더만, 씨발. 좀 제대로 된 사람이랑 사귀지 그래? 아, 네 뒷구멍에 환장하면서 용돈 찔러주니까 좋아 죽겠다, 아주?"


"미친새끼,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할 말 못할 말 가려서 해. 그리고, 해리는 그냥 내 후원자일 뿐이야. 결정적으로 내가 누구랑 만나든 말든, 더이상 네가 상관할 일 아니야. 괜한 걸로 시비 걸지말고 꺼져."


입학 전이라 준비할 것이 많았던 에그시는 더이상 로트와일러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저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으며, 로트와일러와 딘 같은 '옛 일'은 청산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해리가 추천해준 학교는 명문이라는 것 보다도, 기숙 학교라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다시는, 그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안녕, 난 에그시라고 해. 어, 개리 에그시 언윈. 편하게 에그시라고 불러."


"에기?"


"아니, 에그시."



"아, 내 이름은 찰리야. 찰리 해스켓."


기숙 학교인만큼 룸메이트가 중요했는데, 다행히  찰리는 썩 매너가 좋은 아이였다. 해스켓이라니, TV에서 자주 나오던 성 같았다. 아마 이 학교가 명문 사립학교인 만큼 유명인사들의 자제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에그시는 찰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찰리가 에그시를 처음 봤을 때 먼저, 어느 집안의 자제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망한 정치가의 아들이었던지라 늘 제게 다가오는 사람은 재벌에, 정치가에, 유능한 사업가의 아들들이었다. 하지만 에그시는 달랐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에그시는 재벌, 정치가, 유능한 사업가의 아들이 아니었다. 정말 평범한- 아니 오히려 하위 계층에 속할 것이다- 가정의 아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제 맘에 들었다. 시커먼 속을 감추고 접근하는 사람들과는 근본부터가 달랐으니까.

항상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자신과는 달리 에그시는 아침잠이 많았다. 제가 시간표를 보고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하는 스타일이었다. 늘 제가 깨워주지 않으면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고, 수업 시간도 자주 헷갈려했으며, 강의실을 못 찾는 것도 일상이었다. 에그시는 종종 자기가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저를 만나고 나서부터 변했다고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았지만, 그랬냐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보다 작은 키에, 유독 다른 애들보다 하얘서 그런지 정말 귀여웠다.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었다. 아마, 에그시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찰리, 지금 몇시야?"



"두시. 수업 가야했던 것 같은데, 너."



"어, 맞아. 너는? 오늘 수업 언제끝나?"


"난 오늘 수업 끝났어."



"그럼 오늘 저녁도 같이먹자. 나 기다려 줘야해? 나 간다!"


"ㅇ...,"



제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박차고 나간 에그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보면 볼수록 자신보다 어려보였다. 어떻게 저 모습이 동갑일 수가 있는 것일까. 영락없는 어린 모습인데. 뭐, 그래서 더 귀엽긴 하지만.


-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해버렸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게 이렇게 떨렸나. 항상 같이 먹는거였는데. 에그시는 빨갛게 된 귀를 애써 무시하고는 강의실을 향해 뛰었다. 사실, 찰리를 처음 보자마자 반한 건 아니었다. 아침잠이 많은 저를 깨워주고, 늘 챙겨주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게다가 매너까지 좋았다. 로트와일러와는 출신부터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으며, 심지어 로트와일러만큼 짐승같지도 않았다. 집도 편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학교에 와서 찰리덕에 적응을 더 잘하게 되었다. 물론 명문가 출신 도련님들이 많았지만 찰리와 같은 방을 쓰는 저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유명한 집 자제였구나, 찰리는.


"찰리, 과제 아직 많이 남았어?"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무슨 정신으로 침대에 누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이 가득 묻은 얼굴로 침대에 있던 에그시가 맞은 편의 찰리를 바라보고는 벽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직 스탠드의 불빛을 끄지 않은 찰리가 뒤를 돌았다. 아직 더 남았다며, 자라고 하는 찰리의 목소리에도 피곤함이 가득했다.


"나 때문에 깼어? 미안. 이제 조금만 하면 돼. 얼른 더 자."


평소보다도 훨씬 낮은 찰리의 목소리에 에그시는 스르르 다시 눈을 감았다. 찰리는 서둘러 과제를 마무리하고 에그시의 침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제 침대에 누웠다. 에그시의 침대 방향으로 몸을 튼 찰리가 창으로 새어나오는 달빛에 비친 에그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법 긴 속눈썹, 오똑하고 올망졸망한 코, 살짝 벌어진 빨간 입술. 사내녀석 치고는 제법 예쁘게 생긴 얼굴이었다. 더워서 이불을 발로 차버린 에그시 덕분에 윗옷을 입고 자지 않는 에그시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동안 몰랐는데, 에그시의 몸에는 잔근육이 꽤나 잘 붙어 있었다. 서서히 살펴보다 온통 하얀 몸에, 유독 핑크색인 곳이 도드라져 보였다. 황급히 눈을 감았으나 아른거리는 몸에 찰리는 밤새 잠을 설쳤다.


-


"찰리, 어디 아파? 안색이 안좋아."


"아니야. 잠을 못 자서 그런가봐."



"다크서클이 이만큼이나 내려왔어. 그러게 빨리 끝내지."


"...그러게 말이야."


일주일에 한 번, 찰리는 에그시와 같이 듣는 수업이 있었다. 차마 어제 밤에 네 몸이 아른거려 자지 못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필이면 에그시와 교양을 같이 듣는 전날에 그의 몸을 본 것이 잘못이었는지, 찰리는 이제 에그시의 얼굴만 봐도 미칠 지경이었다. 속으로 여러 번 욕을 지껄인 찰리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교양 수업이 끝나자마자 에그시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거 아냐."



"응? 뭐?"



"나, 너 좋아하는 것 같다."


"으응.,... 어? 콜록콜록- 뭐라,고? 콜록-"


밥을 먹다가 어지간히 놀랐는지 기침을 하는 에그시에게 물컵을 건넨 찰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미안. 이라고 말한 찰리의 눈꼬리가 쳐졌다.


"어, 그러니까, 날 좋아한다는 말이지? ㅇ....., 그러니까...."


"응. 대답해 주지 않아도 돼. 부담을 주려던 건 아니야."


"아니, 그게, 어..... 사실 말이야, 나도.."


좋아해, 찰리.

좀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으나 들었는지 찰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에그시의 손을 잡아오는 찰리의 손이 유독 더 따스했다. 다행이다. 라고 하는 찰리가 사랑스러워 손을 마주잡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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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그시찰리]  (0)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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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 첫 살인

00Q/00Q전력 2016. 1. 3. 23:31
*짧습니다
*재미없어요. 막 휘갈겼습니다.
*본드의 첫 살인에 대한 기억을 보듬어주는 큐를 보고싶었는데 실패한 것 같네요.
*캐붕주의







탕-



모든 더블오섹션의 요원들이 말했듯, 처음의 '살인'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제 전임 007도, 현재의 005도 모두 햇병아리 제임스 본드-이제 막 00섹션에 올라선-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이었다. 아무리 타겟을 맞추는 연습을 했어도 살인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블오 요원들의 시작은 모두 그랬다.


제 첫 살인도 그랬다. 아무리 '국가'를 위한 살인이라고 해도,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제 신분은 공적으로는 제임스 본드 중령이었고, 드러나서는 안되는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처음 방아쇠를 당기던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고, 종종 꿈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꿈을 꿀 때면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기도 했다.



*




"큐."


"또 꿈을 꿨군요."


제 옆의 어린 연인은 언제나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옆에서 잠든 제게 신경을 쓰는 것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업무 때문이었다. 덕분에 항상 악몽을 꾸고 나면 제 옆에 있던 어린 연인이 그를 안아주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몸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심한 얼굴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도, 제게 온 신경을 쏟는 것이 고마웠다.


처음 제가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을때,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랬군요. 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물론 그도 본드 못지 않게 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한 번도 제 손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살인의 무게를 제 손으로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당신의 첫 살인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는 내가 짐작하지 못하겠죠.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니까."


"......."


"나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없애진 못해요. 그저 이렇게 꿈을 꿨을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식은땀을 흘리는 당신을 안아주는 것 밖에 못 하죠."


"...그거면 충분해, 큐."



*



제 첫 살인은 어느 생체실험실의 책임자를 죽이는 일이었다. 일대 일로 그와 대면하고는 총을 들어올렸을 때, 수없이 많은 움직이는 타겟판을 쏘았음에도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고 그는 서랍 속의 제 총을 집어들었다. 역시, 미리 총알을 빼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을 때 이미 싸늘히 식은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군? 처음인가?"


조롱 섞인 비웃음을 던지던 그를 향해 총을 들어올렸다.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 마주친 그의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 눈이 감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싸늘히 식어가는 죽어버린 몸뚱아리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제 첫 살인이었고, 그 눈은 지금까지도 꿈에 등장했다. 갈색의 눈동자였다.


처음 임무를 완수하고는 MI6로 복귀했을 때, 본드는 수많은 심리치료를 받아야했다. 잠이 들면 갈색의 눈동자가 저를 따라다녔다. 제가 사용했던 총을 가지고 복귀했으나 그 총은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M은 말없이 본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마 그 손길이 없었다면 정말로 미쳐버렸을 것이다.


훈련을 할 때도 타겟에 그 눈동자가 비쳐 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손 때문에 1위를 달리던 본드의 사격 훈련 점수는 엉망이 되었다. 결국 본드는 첫 임무를 완수하고는 세 달을 심리 치료에 매진해야 했다. 그만큼 첫 살인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



"내가 누누히 얘기하지만 요원들은 대부분 꾸준한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해요."


"그래도 빈도 수가 많이 줄었는걸."


"빈도 수가 적은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도-"


"16년이 지났어, 큐."


"......"


"근데 어제 일 처럼 생생해. 모든 더블오 요원들이 그랬겠지. 다들 나에게 그랬어. 처음은 어렵지만 두 번째 부터는 쉽다고. 그건 맞는 얘기야. 난 지금 두 번째 타겟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거든."


"내가 죽을 때까지 아마 날 따라다닐거야. 그건 내 그림자야, 큐."


"....본드."



불쌍한 사람. 큐는 그런 본드를 좀 더 꼭 안아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에 대한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적어도 함께 있을 땐 그 '첫 살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단단한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을 감싸쥐었다. 이 손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큐는 제 애인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까칠한 손바닥이 입술에 고스란히 닿았다. 큐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발터는 꼬박꼬박 반납하도록 해요. 알았죠?"


눈을 접으며 예쁘게 말한 큐가 쪽, 소리나도록 다시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어깨를 으쓱한 본드가 그의 얼굴을 끌어왔다. 가까워지는 얼굴에 큐는 사르르 웃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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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부상

00Q/00Q전력 2015. 12. 27. 23:25
*오타 및 노잼주의
*짧습니다






쾅-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큐브랜치에 울렸다.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운 새까만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머그잔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기어이 그 머그잔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제 모습을 잃었다.


"부장님? 부장님! 괜찮으세요?"


태너가 큐의 어깨를 잡았다. 손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태너의 목소리를 듣고 가까스로 제정신을 되찾은 큐가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잡았다.


"더블오세븐? 더블오세븐! 내 말 들려요?"


인이어가 치직거린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친 큐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겨있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불안한 큐의 동공이 떨렸다. 한참을 아무것도 못한 채 애꿎은 책상만 쾅쾅 쳐대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큐는 움직일 줄 몰랐다. 주변의 카메라들을 아무리 돌려도 본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치직거리던 인이어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큐의 얼굴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물들었다.


"더블오세븐? 지금 어디에요? 무사해요?"


"큐.."


"어디에요. 어디길래 스마트 블러드도 뺀거에요?"


"큭...뺀게 아니고,.."


"아냐, 그건 됐고. 일단 어디에요. 지금 의료팀이랑 백업 팀 보낼거에요.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죠?"


"임무 지역에서, 크윽. 세시 방향으로 약 500미터정도.. 폐건물 안에 있어, 큐. 빨리... 윽,"


"다들 뭐 해요? 본드 목소리 못들었어요? 빨리 의료팀이랑 백업 팀 보내요! 태너, 멍하니 서있지 말고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큐의 손이 빨라졌다. 태너는 황급히 의료팀과 백업팀을 보냈고, 그제야 한숨을 내쉰 큐가 제 발치의 깨진 머그잔을 바라보았다. 젠장, 어쩐지 이번 머그는 꽤 오래간다 했는데.

본드의 백업을 할 때마다 평소보다 더 강박적으로 얼그레이를 찾는 큐는 그가 위험에 처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머그를 떨어트렸다. 연인이 되기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큐를 감성적으로 만들어버린건 바로 그 유명한 제임스 본드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저 둘의 연애가 오래지 않아 파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3년째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평범하게.

주말에만 만나던-그마저도 큐의 워커홀릭 기질 때문에 몇 시간 만나지도 못했다-그들은 점차 MI6내에서도 붙어먹더니, 결국에는 플랫을 합치기에 이르렀다. 이유인 즉슨 볼 시간도 부족한데 꼭 떨어져 지내야하냐는 큐의 합리적인 시간 개념 때문이었다. 본드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들은 사실상 결혼만 안 했지 거의 부부같은 사이였다. 둘 사이의 파트너쉽은 더욱 끈끈해졌고, 본드도 조금은 제 몸을 아낄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본드가 다칠 때마다 머그잔을 깨는 큐는 정말이지 더이상은 본드의 백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제 두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부상을 당하는 장면을 본다는건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드와의 연애 후에는 종종 태너에게 백업을 맡기기도 했었다.

한참을 브랜치에 앉아있던 큐가 의료팀이 도착했다는 말과 동시에 지하의 의료센터로 향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본드의 상황을 물어보니 이번 부상은 꽤나 심각했다. 어깨에 총상을 입었고, 왼팔과 등에 자상을 입었다고 했다. 출혈이 꽤 많아 조금만 더 있었다면 쇼크가 올 수 있었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그만 큐의 다리가 풀려버렸다. 옆에 있던 말로리와 태너가 그를 일으켜 주었다. 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



수술실에서 병동으로 옮겨진 본드는 수술이 끝난지 세시간이 지났음에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초조하게 옆에 앉아 손을 덜덜 떨던 큐가 미세한 손의 움직임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제임스? 하고 조심스레 부르니 눈을 뜬 본드의 눈동자와 제 눈동자가 마주쳤다.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졌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큐."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물을 입 앞에 대주니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살짝 몸을 일으켜 물을 삼켰다. 왜 울어.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마치 저를 달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으흑, 흑,...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기는 해요?"


"안 죽었잖아."


입만 살아서는, 진짜! 하고 소리치던 큐가 본드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와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본드는 오른팔을 옮겨 제 옆에 놓인 큐의 손을 잡아주었다. 제 손을 급하게 휘감아오는 큐의 손가락을 쓸어준 본드가 그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한참을 울던 큐는 티슈로 제 눈물을 모두 닦아내었다. 퉁퉁 부은 눈이 제법 귀여워서 본드는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 큐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웃지 마요, 진짜...."


"보직 변경 신청할까, 큐?"


나 때문에 우는 네 모습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 라고 덧붙인 본드의 말에 큐는 놀란듯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여러번 보직 변경을 하라고 해도 그렇게 말을 듣지 않던 본드였는데. 큐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죠? 약속 한거에요? 약속 꼭 지켜야해요?"


고개를 끄덕인 본드가 큐와 눈을 맞췄다. 푸른 눈에 담긴 확신이 그에게도 전해졌다. 위험한 일이 없을거라곤 장담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화면으로 제 연인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큐는 몸을 숙여 제 연인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기 직전, 고마워요. 라고 속삭인 입술이 까칠한 본드의 입술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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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떡썰

00Q/조각글 2015. 12. 2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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