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Christmas day
*2015 00Q 크리스마스합작에 냈던 작품입니다. 주최자는 나오미님이셨구요. 트위터에 공큐합작 검색하시면 아마 나올거예요.
*오메가버스 세계관
*본드는 우성알파, 큐는 열성오메가
*아이들의 나이는 4살로 설정하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본드."
"수고했어, 큐."
긴장이 풀리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큐가 송신기를 빼내었다. 비교적 가까운 로마에서 수행한 임무라, 바로 비행기를 탄다면 아슬아슬하게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지 않게 비행기 타요. 아마 시간 맞춰서 비행기 타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난 애들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본드. 집에서 봐요."
'통신 끊김'이라고 뜬 커다란 화면을 뒤로한 채 큐가 퇴근을 명령했다. 요원 백업중인 분들 말고는 다들 퇴근하세요! 하고 소리친 그가 MI6 내의 데이케어센터-말로리와의 육아 휴직에 대한 싸움 끝에 얻어낸-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데이케어센터에는 제 아이들과 큐브랜치 직원의 자녀 몇 명밖에 없었다. 큐는 제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었다.
“다니엘, 레아. 잘 있었어? 파파가 많이 늦었지, 미안해.”
“아냐, 괜찮아. 피터랑 놀고 있었어!”
“그랬어? 이제 집에 가자. 레아, 파파 손 잡아야지?”
데이케어센터의 교사인 로렌에게 인사를 한 후 아이들의 손을 잡은 큐가 MI6 뒤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큐는 면허가 없어서-사실 딸 생각도 없었지만-늘 출퇴근을 튜브로 하곤 했다. 물론 본드가 있을 땐 그의 차로 이동하지만, 이렇게 본드가 임무를 간다면 종종 결혼 전처럼 튜브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큐는 다행히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튜브를 타면 그건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더군다나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탄다면,...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은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긴 해도 런던에서 제일가는 세이프 하우스였다. MI6의 최연소 쿼터마스터가 설계한 보안체계에, 집의 모든 유리는 방탄으로 되어있었다.
제 씨를 지키기 위한 알파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본드 역시 그런 알파들 중에 한명이었다. 그는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가 있는 꽤나 이름 높은 스코틀랜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본드 가문은 예전부터 우성 알파로 유명했고, 그 알파들은 모두 제 씨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큐가 임신했을 당시만 해도 얼마나 싸고도는지 애들 때문이 아닌 본드 때문에 피곤할 지경이었다. 열성 오메가인 큐는 임신이 힘들었고, 본드와 함께 지내면서 호르몬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임신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쌍둥이라니. 큐와 본드는 제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 시가지에 땅을 사들여 이런 집을 지었고, 큐와 아이들은 그 안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이 그렇게 썩어나냐며 큐가 말렸지만 본드는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더 이상 큐는 말릴 수 없게 되었다. 휴가도 못 가니 벌어들이는 돈만 족족 쌓이는 꼴이었다. 물론 그건 큐도 마찬가지였지만.
한참을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던 큐는 그만 소파에서 잠들고 말았다. 아이들이 거실의 커다란 트리 앞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니엘, 다 썼어?”
“아니, 아직. 너는?”
“나도 아직. 산타한테 뭐 사달라고 할 거야?”
“나는 장난감 총! 레아 너는?”
“나는 으음... 곰인형! 곰인형 갖고 싶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설핏 잠이 깬 큐가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45분, 자정이 되기 15분 전이었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걸 보니 비행기가 늦거나, 아니면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트리 앞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들의 앞에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두 장씩 놓여 있었다. 큐가 한 손으로 집어들고는 숨죽여 웃었다. 귀엽기도 해라.
현관에서 익숙한 해제음이 들렸다. 소파에 앉아 아이들의 편지를 읽던 큐가 고개를 들었다. 피 냄새가 옅게 풍기는 본드가 다가와 입을 맞췄다. 함께 들어온 냉기에 살짝 몸을 떤 큐를 그가 안아주었다.
“왔어요, 제임스?”
“기다리지 말랬잖아.”
“크리스마스잖아요. 당신 오는 거 보고 자려고..”
“그랬어? 애들ㅇ...”
“쉿, 저기서 잠들었어요. 아빠 기다리다가.”
배시시 웃은 큐가 아이들을 가리켰다. 트리 앞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들이 숨을 색색 내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곰인형과 장난감 총을 사온 본드가 아이들의 머리맡에 선물을 내려놓고는 두꺼운 담요를 가져와 아이들에게 덮어주었다. 그 유명한 더블오세븐이 곰인형을 들고 입국했다고 생각하니 그만 풋, 하고 터져버렸다. 피 냄새가 나는 수트에, 귀여운 곰인형이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오 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스카이폴 사건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다정한 모습이었다. 더블오세븐과 그의 아이라니.
“얼른 씻어요. 피 묻은 건 내일 맡기고요. 아, 내일은 쉬겠네, 참.”
본드의 자켓을 받아든 큐가 한숨을 쉬었다. 핏자국은 빨리 없애야 하는데. 하고 시무룩해진 큐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 본드가 욕실로 향했다. 어느 정도 지난 후, 큐가 랩탑을 닫음과 동시에 본드의 물소리도 멎었다. 탄탄한 몸이 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 돼요. 애들 거실에 있잖아요.”
피식 웃은 본드가 아직 물기가 남은 몸을 숙여 얼굴을 포갰다. 위에서 내리 누르듯 키스한 탓에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영락없이 키스를 받고 있어 숨이 모자랐던 큐가 단단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느새 파자마 단추 위에서 꼼지락대던 손가락도 저절로 멀어졌다.
“오늘은 이 이상 안 된다고 했잖아요. 애들 거실에 있는데 깨면 어쩌려고.”
“스릴 있고 좋지 않겠어?”
“나 오늘도 야근한 거 알잖아요.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눈을 흘기며 돌아누운 큐의 뺨에 입을 맞춘 본드가 그를 끌어안았다. 제법 따끈한 체온에, 제 본딩 오메가 특유의 향이 느껴지자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향이 피어오르는 뒷목에 쪽쪽대며 입을 맞추자 얼른 자라는 큐의 핀잔이 돌아왔다. 본드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
“발터는 챙겼어요?”
어김없이 묻는 말에 본드는 고개를 저었다. 뭘 물어. 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것은 늘 본드의 몫이었고, 큐는 늘 그렇듯이 식탁에 앉아 얼그레이를 내리고 있었다. 머그잔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아 그가 피식 웃었다.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에 담아 식탁 앞으로 가니 큐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세모꼴로 떠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라, 본드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큐에게 입을 맞췄다. 물론, 바로 얼굴을 밀어내는 큐였지만.
“으읍, 이걸로 넘어갈 생각 말아요! 내가 이번엔 진짜 신경 써서 만든 거라구요! 예산 따느라 죽을 뻔 했는데 그걸 두고 와요, 제임스 본드?!”
“미안, 이번엔 정말로 잃어버렸어.”
“내가 그 말을 참 잘도 믿겠네요.”
“우웅....파파, 대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레아가 식탁에 다가와 큐를 끌어안았다. 아직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아 잠투정을 부리는 레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 큐가 다시 제 앞의 본드를 노려보았다. 본드는 말없이 웃으며 큐에게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를 먹여주었다. 뒤이어 깨어난 다니엘이 본드에게 와서 칭얼거렸다.
“다니엘, 잘 잤어? 손에 그건 뭐야?”
“우웅, 대디 줄 카드..”
삐뚤삐둘한 글씨로 써내려간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보고 싶어, 대디.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적혀있었다. 본드는 그런 다니엘이 기특한지 여러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를 쏙 빼닮은 외모와 머리칼-큐를 닮은 부분은 암녹색 눈동자뿐인-을 가진 다니엘은 유독 본드를 잘 따랐다. 본드는 잠이 덜 깨 꾸벅꾸벅 조는 다니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니엘, 레아. 저기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간 선물 봤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와아-하며 달려가는 쌍둥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편지를 보고 사오지도 않았는데 정확히 그들이 갖고 싶던 것을 살 수 있었던 건,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장난감 총과 곰인형 노래를 부르던 두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큐가 콧노래를 부르며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말끔히 비워냈다.
“크리스마슨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좀 특별한 저녁을 보내고 싶은데요. 애들 좋아하는 디즈니 숍에 갔다가, 근사한 저녁도 먹고 싶고요.”
“이런 거 말하는 거야, 퀜틴?”
본드가 미리 준비한 크루즈 레스토랑 티켓을 내밀었다. 임무에 가기 전, 우연히 태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사둔 티켓이었다. 큐는 사람이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혹시나 하고 사본 것이었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세상에, 언제 준비한 거에요?”
“그냥, 혹시나 해서 사봤어.”
“내가 사랑한다고 얘기 했어요?”
“네가 사람 많은 크루즈를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매일 MI6에 갇혀있는데, 어디가 싫을까.”
본드의 목을 끌어안은 큐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을 내리 깔고는 서툴게 핥아오는 혀에 본드가 웃으며 다시 그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큐의 등이 움찔, 하는 것이 느껴졌다. 느릿하게 큐의 입술을 핥은 본드가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떼었다. 쪽, 하고 가벼운 입맞춤이 몇 번 더 반복되었고, 아이들은 각자 가진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다니엘, 레아. 아침 먹어야지?”
“우웅, 파파. 조금만 더 갖고 놀고 싶은데-”
“안 돼.”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의 손에서 각각 장난감 총과 곰인형을 압수했다. 아이들은 히잉, 하고 본드를 올려다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안 돼. 다니엘, 레아. 대신 아침 먹으면, 대디가 선물 사줄게.”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이미 주셨는데?”
“저건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거고, 이번엔 아빠가 주는 선물. 어때? 아침 먹을 거지?”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이 순식간에 시리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큐가 깜빡하고 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시지와 계란이 딱 두 명 분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장을 볼 시간이 없기도 없었거니와, 큐 혼자서 아이 둘을 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큐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장을 보면 가져오는 것 또한 문제였고 말이다.
“아이들은 내가 마저 먹일 테니까, 씻고 옷 갈아입어.”
“알았어요. 그럼 좀 부탁할게요.”
-
“파파! 우리 어디 가요?”
“너희들 장난감 사러. 뭐 갖고 싶어, 다니엘?”
“나? 으음... 음.. 투스리스 피규어!”
“레아는?”
“레아는 엘사 드레스! 엘사 드레스 갖고 싶어, 파파!”
“알았어. 그거 사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자?”
“차 시동 걸어 놓을게. 문 단속 하고 나와.”
“응, 히터 틀어놔요.”
창문을 걸고, 집안의 모든 보안 체계를 조정한 다음에야 문을 나선 큐는 그새 따뜻하게 데워진 차 안의 공기에 만족스러운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부드럽게 핸들을 꺾은 본드가 익숙한 듯 디즈니 숍으로 향했다. 역시나 디즈니 숍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아이들은 단단한 본드의 팔에 안겨 있었다. 엘사 드레스와 투스리스 피규어를 간신히 계산하고 나오자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마 큐까지 매장 안에 들어갔다면, 분명히 그는 사람들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다 샀어요? 꽤 오래 걸렸네요.”
“응, 보다시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으으, 하면서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투스리스 피규어라더니, 제 얼굴 만한 크기의 피규어를 끌어안은 다니엘과, 아까워서 포장도 뜯지 못한 엘사 드레스를 꼭 껴안은 레아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얼른 가요, 우리 늦겠다.”
고개를 끄덕인 본드가 속력을 올렸다. 런던에서 꽤나 떨어진 브라이튼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의 로맨틱한 식사라. 물론 수트를 입은 제임스 본드와는 꽤나 잘 어울렸지만, 역시나 임무 이외에 그런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서는 주로 ‘여자’를 만나고는 했었으니 말이다.
차 안의 공기가 덥다 못해 답답해져서 본드는 제 쪽의 창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따뜻한 공기와 선물의 만족감으로 인해 이미 잠들어 있었다. 큐도 또한 따뜻한 공기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삼십 분 정도 남아있었다. 고요하고도 편안한 적막이었다.
“퀜틴, 다니엘, 레아.”
“으응... 다 왔어요?”
“응. 다 왔어.”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두 팔로 안아올리자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안고는 크루즈 안으로 향했다. 코트를 벗어 직원에게 건네고는 통유리창 바로 옆의 테이블에 앉은 큐가 탄성을 내질렀다. 해가 어둑어둑하게 지는 수평선, 반짝이는 건물들 모두 큐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으니까.
“마음에 들어, 퀜틴?”
“최고에요. 여태까지 받아 본 선물 중에요. 정말로요.”
“예약하길 잘했군.”
턱을 괴고 한참을 밖을 바라보던 큐가 펑, 하는 큰 소리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두워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수면에 비친 불꽃과, 그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놀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새 잠이 깬 아이들도 창문에 달라붙어 와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제임스, 고마워요.”
“뭐가.”
“그냥, 다요.”
피식 웃은 본드가 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밤바다와, 화려한 도시의 빌딩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큐에게도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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