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Q 전력-코드네임

00Q/00Q전력 2016. 1. 31. 23:04

*짧고 재미없습니다. 조각글 수준이에요.
*Q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제임스, 우리 처음 본 날, 기억 나요?"


"내가 복귀하고 나서 처음이었지. 내셔널 갤러리에서 말이야."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싱긋 웃은 큐가 생각에 잠겼다. 내셔널 갤러리는 그와 본드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인, 그러니까 본드가 막 007이라는 코드네임을 받았을 때였다. 그 때의 그는 조금 더 젊었고, 패기가 넘쳤다. 그를 처음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었다. Q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모두 본드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냐면요,"



-



"하아, 하,"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너무 놀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왜 하필, 그것도 제가 있던 곳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을까. 퀜틴 데일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곳-아마도 출입문이었던-으로 향했으나, 연약한 유리는 제 앞에서 부서져내렸다. 몸을 잔뜩 웅크린 덕에 다치진 않았으나 서 있을 공간이 부족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가 야드로 전화를 걸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위치를 설명했다. 주변엔 건물 잔해에 깔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죽음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으나 끔찍한 것은 여전했다. 퀜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저를 막고 있던 건물 잔해들이 치워졌으며, 폭탄 테러범으로 보이는 사람이 야드로 연행되고 있었다. 제 앞의 건물 잔해를 밟고 서있던 사람이 돌아섰다. 눈부신 금발에, 젠틀한 미소였다. 하지만 어딘가 거칠어보이는 사람이었다. 퀜틴은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눈을 뜨니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컴퓨터-주로 해킹-에 익숙했고,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렸던, 옥스포드 대학을 조기 졸업한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를 찾기로 결심했다. 제 자존심을 걸고, 꼭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한 마디를 꼭 전해주고 싶었다.


퇴원 후 제 플랫에 있던 랩탑으로 스코틀랜드 야드 서버에 접속했다. 야드의 모든 경찰들을 조사했으나 제가 봤던 사람은 없었다. 야드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일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다는건 그 퀜틴 데일에게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모든 국가 기관을 뒤졌고-물론 MI6 같은 곳은 접근하지 못했다-꽤나 시간이 흘렀다. 벌써 제가 폭탄 테러를 겪은 지 일주일이 흘렀다. 해군 소속 제임스 본드 중령. 그것이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해군이 왜, 어째서 폭탄 테러-그것도 런던 은행-의 현장에 있던 것일까. 해군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퀜틴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제가 현재 그를 찾을 수 없다면, 모든 정보가 모여있는 곳에서 그를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영국의 모든 비밀스러운 정보가 모이는 곳, 그리고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곳. 바로MI6였다. 스무 살의 퀜틴 데일은, 그렇게 MI6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뒤, Q라는 코드네임을 받고 나서야 퀜틴 데일은 제임스 본드를 만날 수 있었다.



-



"그런데 당신은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본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좀처럼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 못한 본드였는데, 꽤나 놀랐나보다. 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코드네임이 당신을 찾게 도와준거죠."


"만약 내가 MI6에도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어쩌긴요. 영국 전체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냈겠죠. MI6의 쿼터마스터가 당신 하나 못 찾아낼까봐요?"


Q라는 코드네임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제임스 본드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쿼터마스터가 되고 나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큐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놀려주고 싶었다. 우스꽝스러운-본드의 표현을 빌리자면-수트에 야상자켓, 그리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한 발터와 라디오 수신기. 아마도 꽤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이라도 그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에 그랬던 것이었다. 큐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입 밖으로 낸다면 아마도 세 달짜리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 좋아한 건 언제부터였는데?"


"뭘 그런걸 물어요, 새삼스럽게."


당연히, 처음 본 그 순간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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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 전력-비밀연애

00Q/00Q전력 2016. 1. 10. 23:09
*오타주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늘 그렇지만 재미없습니다
*짧습니다






"아, 엘, 왔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네, 큐. 10분 뒤에 상담실로 와요."


모든 요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심리 검사를 진행한다. 사실 말이 심리 검사지, 거의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같았달까, 그래서 '엘'은 MI6내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리 검사에 열심인 사람은, 다름아닌 쿼터마스터와 태너였다.

쿼터마스터-통칭 Q-와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마치 동성 친구 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는 기계를 주로 다루지만 매우 섬세했고, 꽤나 감수성이 풍부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패딩턴이라고, 늘 그걸 보고는 울곤 한다며 종종 말하기도 했다.


"엘, 나 왔어요. 얼그레이 괜찮죠?"


"세상에, 큐. 바쁜데도 차까지. 고마워요. 앉아요."


하아-


한숨을 쉬는 게 그의 버릇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그의 한숨은 모두 요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007에 대해서 생각만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러니까, 제임ㅅ, 아니 본드가 또 임무 중에 여자랑...그..."


"섹스요?"


"그래요, 그거. 그걸 또 했는데.. 글쎄 그 인간이 그 방에 CCTV를 보고 씨익 웃는 거에요, 나 보는거 뻔히 아니까."


"그래서요?"


"아니 근데 자기가 그렇게 웃으면 어떤 표정인지 자기는 모르나봐요. 나는 막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막 솟구쳐서... 나는 여기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니까요. 제ㅇ, 본드가 내 지시를 잘 따르는 것도 아니구요. 그 날도 그 여자랑 잘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큐, 007이랑 연애해요?"


풉-


큐가 머금고 있던 얼그레이를 뿜어버렸다. 그 덕에 엘의 옷이 젖어버렸다. 미안해요, 라고 어쩔 줄 모르는 큐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딱 봐도 둘이 연애하는거 다 티나는데. 본인들은 아마 잘 숨긴다고 생각하겠지만-아니 큐만-사실은 브랜치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부서인 자신도 아는 것으로 보아, 아마 MI6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큐만 모르는 것 같았다. 본드는 알 텐데. 아니, 오히려 일부러 더 티를 냈을지도 모른다. 큐의 반응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었으니까.


"ㄴ...내가 ㅈ, 본드랑 미쳤다고 연애 해요????"


"큐.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얘기한 거 그대로 들려 줘요?"


반박 못 할 텐데. 그건 완전 바람난 남편 말하는 것 같았다구요, 큐. 라고 덧붙이자 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숨을 쉬며 다시 얼그레이를 홀짝였다. 이 맛에 아마 본드가 큐를 놀려먹는 거겠지. 엘도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모르는 척 해 줄게요. 뭐, 얼마나 갈 진 모르겠지만요."


빙긋 웃으며 얘기하자 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른 때는 표정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아서 인간이 맞나,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평범한 청년이다. 제 나이로 보인달까. 사실, 큐는 엘과 동갑이었다. 그러기에는 성격이 그 나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큐. 그래서 007이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질투났던거군요?"


"내가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질투라고 해요, 큐."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큐의 표정은 꽤나 바보같았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큐는 그동안 007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MI6 입사 이전부터 큐를 알았던 엘은 그의 연애사를 전부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업무 중이니 서로 존칭을 쓰지만 사석에선 꽤나 자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얼그레이를 들고 있는 큐의 손을 내려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차를 쏟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큐, 큐? 하는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찾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얘기는 우리 일 끝나고 마저 해요. 오늘 007 임무 나갔죠?"


"오늘 출국했고, 내일 임무 시작이에요. 아직 하늘 위일걸."


"좋아요. 그럼 이따 퇴근하고 펍에서 보죠. 이제 태너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차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고마워요, 엘. 퇴근 후에 봐요. 세탁비는..."


"이따 줘요. 나가봐요, 큐."


웃으며 나가는 큐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입모양으로 안녕. 이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귀여운 제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사실 알고 있었지만-연애한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007이라니. 뭐, 그가 좋다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차트를 정리하자마자 태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빼꼼, 하고 들이미는 머리가 오늘따라 더 휑해 보였다.


*


"그래서요, 태너?"


"부장님한테 달려간 007이 글쎄, 부장님 볼에 키스를 하는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브랜치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 그러니까 그게 물론 부장님이 얘기한건 아니고..."


"007이 전부 얘기했다, 이거죠?"


"네. 그래놓고 부장님 한테는 모르는 척 하라는 거 있죠? 공공연한 비밀 연애라나 뭐라나. 부장님 알게 되시면 또 반응 재밌어질 거라면서, 기다리라고요."


"...정말 악취미네요. 아니면 원래가 그런 취향?"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007이 부장님을 좀 어리게 보죠. 맨날 귀엽다고 하시니까."


으으, 하며 팔을 쓸어올리는 태너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지 팔을 벅벅 긁었다. 글쎄, 그 007이 부장님을 놀려먹는 능구렁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하는 태너가 어쩐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은 근데 부장님도 티를 많이 내요. 007만 보면 귀가 빨개지거나, 바쁘지도 않은 업무를 갑자기 막 시키기도 하고. 부끄럼 타는 타입이신가 봐요. 부장님만 모르는 비밀 연애인데."


푸흡, 하고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랬죠. 하고 맞장구를 쳐주자 태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공개 하시면 좋을텐데. 하고는 얼마 없는 제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냥 공개 하시면 저희들이 부장님 앞에서 연기 할 필요도 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연기 안해도 잘 모르시지만. 엘, 제 머리 보여요? 한 달 전보다 더 빠졌다니까요? 007은 부장님에게 말하는 날에는 쥐도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하지, 부장님은 온 몸으로 티내지. 진짜 죽겠다고요, 저."


"태너, 내가 탈모에 좋은 샴푸 사줄게요. 즐거운 얘기 고마워요."


"후우,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요. 이건 왜 한 달에 한 번인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로 따지면 아마 하루에 한 번 해도 모자랄텐데."


"내 업무도 생각해 줘야죠. 차트 정리하고 보고서 올릴 거에요. 오늘도 근무 환경 개선해야한다고 쓸 거지만, M이 들어줄 지는 모르겠네요. 잘 가요, 태너. 다음 달에 보죠."


"네. 늘 고마워요, 엘."


태너가 나가고, 너무 웃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엘이 차트에 빠르게 적어내렸다.


[스트레스성 탈모 심화, 근무 환경 개선 필요]


뭐, M은 이 보고서를 무시할 것이 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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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day

00Q/조각글 2016. 1. 10. 17:38

*2015 00Q 크리스마스합작에 냈던 작품입니다. 주최자는 나오미님이셨구요. 트위터에 공큐합작 검색하시면 아마 나올거예요.

 

 

 

*오메가버스 세계관
*본드는 우성알파, 큐는 열성오메가
*아이들의 나이는 4살로 설정하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본드."


 "수고했어, 큐."


 긴장이 풀리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큐가 송신기를 빼내었다. 비교적 가까운 로마에서 수행한 임무라, 바로 비행기를 탄다면 아슬아슬하게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지 않게 비행기 타요. 아마 시간 맞춰서 비행기 타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지."


 "난 애들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본드. 집에서 봐요."


 '통신 끊김'이라고 뜬 커다란 화면을 뒤로한 채 큐가 퇴근을 명령했다. 요원 백업중인 분들 말고는 다들 퇴근하세요! 하고 소리친 그가 MI6 내의 데이케어센터-말로리와의 육아 휴직에 대한 싸움 끝에 얻어낸-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데이케어센터에는 제 아이들과 큐브랜치 직원의 자녀 몇 명밖에 없었다. 큐는 제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었다.


 “다니엘, 레아. 잘 있었어? 파파가 많이 늦었지, 미안해.”


 “아냐, 괜찮아. 피터랑 놀고 있었어!”


 “그랬어? 이제 집에 가자. 레아, 파파 손 잡아야지?”


 데이케어센터의 교사인 로렌에게 인사를 한 후 아이들의 손을 잡은 큐가 MI6 뒤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큐는 면허가 없어서-사실 딸 생각도 없었지만-늘 출퇴근을 튜브로 하곤 했다. 물론 본드가 있을 땐 그의 차로 이동하지만, 이렇게 본드가 임무를 간다면 종종 결혼 전처럼 튜브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큐는 다행히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튜브를 타면 그건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더군다나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탄다면,...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은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긴 해도 런던에서 제일가는 세이프 하우스였다. MI6의 최연소 쿼터마스터가 설계한 보안체계에, 집의 모든 유리는 방탄으로 되어있었다.

 제 씨를 지키기 위한 알파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본드 역시 그런 알파들 중에 한명이었다. 그는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가 있는 꽤나 이름 높은 스코틀랜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본드 가문은 예전부터 우성 알파로 유명했고, 그 알파들은 모두 제 씨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큐가 임신했을 당시만 해도 얼마나 싸고도는지 애들 때문이 아닌 본드 때문에 피곤할 지경이었다. 열성 오메가인 큐는 임신이 힘들었고, 본드와 함께 지내면서 호르몬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임신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쌍둥이라니. 큐와 본드는 제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 시가지에 땅을 사들여 이런 집을 지었고, 큐와 아이들은 그 안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이 그렇게 썩어나냐며 큐가 말렸지만 본드는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더 이상 큐는 말릴 수 없게 되었다. 휴가도 못 가니 벌어들이는 돈만 족족 쌓이는 꼴이었다. 물론 그건 큐도 마찬가지였지만.
 한참을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던 큐는 그만 소파에서 잠들고 말았다. 아이들이 거실의 커다란 트리 앞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니엘, 다 썼어?”


 “아니, 아직. 너는?”


 “나도 아직. 산타한테 뭐 사달라고 할 거야?”


 “나는 장난감 총! 레아 너는?”


 “나는 으음... 곰인형! 곰인형 갖고 싶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설핏 잠이 깬 큐가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45분, 자정이 되기 15분 전이었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걸 보니 비행기가 늦거나, 아니면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트리 앞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들의 앞에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두 장씩 놓여 있었다. 큐가 한 손으로 집어들고는 숨죽여 웃었다. 귀엽기도 해라.

 현관에서 익숙한 해제음이 들렸다. 소파에 앉아 아이들의 편지를 읽던 큐가 고개를 들었다. 피 냄새가 옅게 풍기는 본드가 다가와 입을 맞췄다. 함께 들어온 냉기에 살짝 몸을 떤 큐를 그가 안아주었다.

 “왔어요, 제임스?”


 “기다리지 말랬잖아.”


 “크리스마스잖아요. 당신 오는 거 보고 자려고..”


 “그랬어? 애들ㅇ...”


 “쉿, 저기서 잠들었어요. 아빠 기다리다가.”


 배시시 웃은 큐가 아이들을 가리켰다. 트리 앞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들이 숨을 색색 내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곰인형과 장난감 총을 사온 본드가 아이들의 머리맡에 선물을 내려놓고는 두꺼운 담요를 가져와 아이들에게 덮어주었다. 그 유명한 더블오세븐이 곰인형을 들고 입국했다고 생각하니 그만 풋, 하고 터져버렸다. 피 냄새가 나는 수트에, 귀여운 곰인형이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오 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스카이폴 사건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다정한 모습이었다. 더블오세븐과 그의 아이라니.


 “얼른 씻어요. 피 묻은 건 내일 맡기고요. 아, 내일은 쉬겠네, 참.”


 본드의 자켓을 받아든 큐가 한숨을 쉬었다. 핏자국은 빨리 없애야 하는데. 하고 시무룩해진 큐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 본드가 욕실로 향했다. 어느 정도 지난 후, 큐가 랩탑을 닫음과 동시에 본드의 물소리도 멎었다. 탄탄한 몸이 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 돼요. 애들 거실에 있잖아요.”


 피식 웃은 본드가 아직 물기가 남은 몸을 숙여 얼굴을 포갰다. 위에서 내리 누르듯 키스한 탓에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영락없이 키스를 받고 있어 숨이 모자랐던 큐가 단단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어느새 파자마 단추 위에서 꼼지락대던 손가락도 저절로 멀어졌다.


 “오늘은 이 이상 안 된다고 했잖아요. 애들 거실에 있는데 깨면 어쩌려고.”


 “스릴 있고 좋지 않겠어?”


 “나 오늘도 야근한 거 알잖아요.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눈을 흘기며 돌아누운 큐의 뺨에 입을 맞춘 본드가 그를 끌어안았다. 제법 따끈한 체온에, 제 본딩 오메가 특유의 향이 느껴지자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향이 피어오르는 뒷목에 쪽쪽대며 입을 맞추자 얼른 자라는 큐의 핀잔이 돌아왔다. 본드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


 “발터는 챙겼어요?”


 어김없이 묻는 말에 본드는 고개를 저었다. 뭘 물어. 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하는 것은 늘 본드의 몫이었고, 큐는 늘 그렇듯이 식탁에 앉아 얼그레이를 내리고 있었다. 머그잔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아 그가 피식 웃었다.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를 접시에 담아 식탁 앞으로 가니 큐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세모꼴로 떠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라, 본드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큐에게 입을 맞췄다. 물론, 바로 얼굴을 밀어내는 큐였지만.


 “으읍, 이걸로 넘어갈 생각 말아요! 내가 이번엔 진짜 신경 써서 만든 거라구요! 예산 따느라 죽을 뻔 했는데 그걸 두고 와요, 제임스 본드?!”


 “미안, 이번엔 정말로 잃어버렸어.”


 “내가 그 말을 참 잘도 믿겠네요.”


 “우웅....파파, 대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레아가 식탁에 다가와 큐를 끌어안았다. 아직 잠이 온전히 깨지 않아 잠투정을 부리는 레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 큐가 다시 제 앞의 본드를 노려보았다. 본드는 말없이 웃으며 큐에게 스크램블 에그와 소시지를 먹여주었다. 뒤이어 깨어난 다니엘이 본드에게 와서 칭얼거렸다.


 “다니엘, 잘 잤어? 손에 그건 뭐야?”


 “우웅, 대디 줄 카드..”


 삐뚤삐둘한 글씨로 써내려간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보고 싶어, 대디.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적혀있었다. 본드는 그런 다니엘이 기특한지 여러 번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를 쏙 빼닮은 외모와 머리칼-큐를 닮은 부분은 암녹색 눈동자뿐인-을 가진 다니엘은 유독 본드를 잘 따랐다. 본드는 잠이 덜 깨 꾸벅꾸벅 조는 다니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니엘, 레아. 저기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간 선물 봤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와아-하며 달려가는 쌍둥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편지를 보고 사오지도 않았는데 정확히 그들이 갖고 싶던 것을 살 수 있었던 건,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장난감 총과 곰인형 노래를 부르던 두 아이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큐가 콧노래를 부르며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말끔히 비워냈다.


 “크리스마슨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니까.. 좀 특별한 저녁을 보내고 싶은데요. 애들 좋아하는 디즈니 숍에 갔다가, 근사한 저녁도 먹고 싶고요.”


 “이런 거 말하는 거야, 퀜틴?”


 본드가 미리 준비한 크루즈 레스토랑 티켓을 내밀었다. 임무에 가기 전, 우연히 태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사둔 티켓이었다. 큐는 사람이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혹시나 하고 사본 것이었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세상에, 언제 준비한 거에요?”


 “그냥, 혹시나 해서 사봤어.”


 “내가 사랑한다고 얘기 했어요?”


 “네가 사람 많은 크루즈를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매일 MI6에 갇혀있는데, 어디가 싫을까.”


 본드의 목을 끌어안은 큐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을 내리 깔고는 서툴게 핥아오는 혀에 본드가 웃으며 다시 그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큐의 등이 움찔, 하는 것이 느껴졌다. 느릿하게 큐의 입술을 핥은 본드가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떼었다. 쪽, 하고 가벼운 입맞춤이 몇 번 더 반복되었고, 아이들은 각자 가진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다니엘, 레아. 아침 먹어야지?”


 “우웅, 파파. 조금만 더 갖고 놀고 싶은데-”


 “안 돼.”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의 손에서 각각 장난감 총과 곰인형을 압수했다. 아이들은 히잉, 하고 본드를 올려다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안 돼. 다니엘, 레아. 대신 아침 먹으면, 대디가 선물 사줄게.”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이미 주셨는데?”


 “저건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거고, 이번엔 아빠가 주는 선물. 어때? 아침 먹을 거지?”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이 순식간에 시리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큐가 깜빡하고 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시지와 계란이 딱 두 명 분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장을 볼 시간이 없기도 없었거니와, 큐 혼자서 아이 둘을 본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큐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니 장을 보면 가져오는 것 또한 문제였고 말이다.


 “아이들은 내가 마저 먹일 테니까, 씻고 옷 갈아입어.”


 “알았어요. 그럼 좀 부탁할게요.”


-
 “파파! 우리 어디 가요?”


 “너희들 장난감 사러. 뭐 갖고 싶어, 다니엘?”


 “나? 으음... 음.. 투스리스 피규어!”


 “레아는?”


 “레아는 엘사 드레스! 엘사 드레스 갖고 싶어, 파파!”


 “알았어. 그거 사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자?”


 “차 시동 걸어 놓을게. 문 단속 하고 나와.”


 “응, 히터 틀어놔요.”


 창문을 걸고, 집안의 모든 보안 체계를 조정한 다음에야 문을 나선 큐는 그새 따뜻하게 데워진 차 안의 공기에 만족스러운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부드럽게 핸들을 꺾은 본드가 익숙한 듯 디즈니 숍으로 향했다. 역시나 디즈니 숍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아이들은 단단한 본드의 팔에 안겨 있었다. 엘사 드레스와 투스리스 피규어를 간신히 계산하고 나오자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아마 큐까지 매장 안에 들어갔다면, 분명히 그는 사람들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다 샀어요? 꽤 오래 걸렸네요.”


 “응, 보다시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으으, 하면서 고개를 저은 큐가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투스리스 피규어라더니, 제 얼굴 만한 크기의 피규어를 끌어안은 다니엘과, 아까워서 포장도 뜯지 못한 엘사 드레스를 꼭 껴안은 레아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얼른 가요, 우리 늦겠다.”


 고개를 끄덕인 본드가 속력을 올렸다. 런던에서 꽤나 떨어진 브라이튼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였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의 로맨틱한 식사라. 물론 수트를 입은 제임스 본드와는 꽤나 잘 어울렸지만, 역시나 임무 이외에 그런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서는 주로 ‘여자’를 만나고는 했었으니 말이다.

 차 안의 공기가 덥다 못해 답답해져서 본드는 제 쪽의 창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따뜻한 공기와 선물의 만족감으로 인해 이미 잠들어 있었다. 큐도 또한 따뜻한 공기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삼십 분 정도 남아있었다. 고요하고도 편안한 적막이었다.


 “퀜틴, 다니엘, 레아.”


 “으응... 다 왔어요?”


 “응. 다 왔어.”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두 팔로 안아올리자 금세 울음을 뚝 그쳤다.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안고는 크루즈 안으로 향했다. 코트를 벗어 직원에게 건네고는 통유리창 바로 옆의 테이블에 앉은 큐가 탄성을 내질렀다. 해가 어둑어둑하게 지는 수평선, 반짝이는 건물들 모두 큐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으니까.


 “마음에 들어, 퀜틴?”


 “최고에요. 여태까지 받아 본 선물 중에요. 정말로요.”


 “예약하길 잘했군.”


 턱을 괴고 한참을 밖을 바라보던 큐가 펑, 하는 큰 소리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두워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수면에 비친 불꽃과, 그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놀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새 잠이 깬 아이들도 창문에 달라붙어 와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제임스, 고마워요.”


 “뭐가.”


 “그냥, 다요.”


피식 웃은 본드가 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밤바다와, 화려한 도시의 빌딩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큐에게도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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